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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완 벽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17 조회수379 추천수2 반대(0) 신고

한 치의 오차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을 위하여, 매 순간 고심합니다.

실상,

거대한 선박이 바늘 구멍만한 구멍을 방치하다 바다 한 가운데서 침몰의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 법 없이 살다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험난한 세상에 방심하다가 눈뜨고도 코 베일 수도 있으니,

우리 인생사에 이처럼 중요한 덕목도 없을 듯 합니다.

 

하느님도 사람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실수를 용납하시지 않으셨고, 모세의 실수, 사울왕의 실수 또한, 용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7족, 아말렉족의 죄악을 다 갚기까지, 용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철두철미, 율법을 지켜내려는 완벽주의가 탄생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들은 안식일에,

38년 동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를 일으키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의 선행조차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먹고,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정결례를 지키지 않고,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완전하시지만, 완벽을 요구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꺼져 가는 등불, 상한 갈대를 귀찮아, 끄거나 꺾지 않고, 다시 일어나 소성, 번창하기를 끝까지 기다리며, 격려하십니다.

울안에 들어있는 99마리의 양보다, 잃은 1마리의 양을 불쌍히 여겨, 벼랑과 가시밭길을 헤매며, 애타게 찾으십니다.

하느님은 또한, 건강한 자보다, 병든 자를 위한 의원이 되십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버린 돌을 선택하시고, 그 돌로 건물의 머릿돌로 삼으십니다.

하느님은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재판장이 되어 주십니다.

자기 몫을 챙겨 타국에 가서 탕진한 아들이 살아 돌아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아버지입니다.

죄인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속죄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죄악은 미워하시나, 인간을 사랑하시어, 돌이켜 하느님의 품속에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완벽을 추구하던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는 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습니다.

각자, 제 태어난 고향에서, 제 언어 사용하며, 무모한 뜻 품지 않고, 제 분복대로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에 감사하며, 평화로이 사는 삶을 낙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들은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처럼, 온 세상을 정복하여, 자신의 수하에 두려 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완벽을 추구하다가, 자신들의 수()도 채우지 못한 채,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꿈꾸는 완벽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 창조주를 얕보다가 멸망을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꺼져가는 등불마저 끄지 않고, 상한 갈대라도 꺾어 버리지 않고, 애긍하며 그들의 행복을 돕는 마음이 하느님의 완전에 다가서는 길이 됩니다.

 

사람은 하느님처럼 완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용서와 사랑이야말로, 사람이 완전해지는 길입니다.

그것은 실수도, 허물도 과감히 허용하고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용서와 사랑이 없는 완벽은 완전의 길에 장애일 뿐입니다.

또한 완벽을 추구하는 자신 역시, 실수와 허물많은 인생입니다.

내 허물에 눈감고, 남의 허물에 가혹한 것은, 또 하나의 허물을 더하는 것이 됩니다.

용서와 사랑이야 말로, 인간을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만드는 덕목입니다.

완벽은,
전혀 허물과 실수를 찾을 수 없는 냉혈한이 되는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허물과 실수를 저지르며,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어,
용서와 사랑이 필요하여,
하느님께서 특별히 돌보시는,
인간미가 있는 겸손한 사람속에 은밀히 내재된,
사람의 영역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영역의 신비한 것이 아닐까요?

2012년 5월 17일 오후 4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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