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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이 알아야 한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19 조회수283 추천수1 반대(0) 신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요한16,2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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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는 누구에게 청하였을까요. 자신이 기도를 할 때, 그동안 누구에게 청하였는지를 한번쯤 짚어 보았으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이름으로 청하였는지도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들 주위에서는 흔히 이런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000에게 기도를 바친다거나 000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더 잘 들어 주신다는 말까지 합니다. 물론 그렇게 가르치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눈여겨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창세기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뱀의 거짓된 메세지(말, 글)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말씀에는 불순종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도 창세기 때와 같은 '뱀'이라는 그런 어떤 존재의 거짓된 메세지(말, 글, 강의, 출판물 등)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때와 다름없는 불순종의 유혹에 놓여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는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군가 하와, 아담이라면 뱀이 거짓된 메세지(글, 말)로 유혹했듯이 지금의 세대에서도 뱀과 같은 어떤 존재가 거짓된 메세지(강의, 출판물)로 유혹을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에는 불순종하고 거짓된 '뱀의 가르침'에는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하와가 먼저 수용하고 다음에 아담에게 전하는 일은 지금도 그러합니다. 누군가 어느 분들은 먼저 '뱀의 가르침'(요한묵시록)을 수용하고,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인 것처럼 혹은 진리의 가르침인 양 다른 이들에게 전합니다. 그리고는 아담처럼 '뱀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요한 5,42 - 43)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이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께 청하며 다른 이를 받아들인 사람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청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그에게 기도를 바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인간의 본성에 여전히 남아 있는 '창세기의 상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순종 할 것인지, 순종 할 것인지는 창세기 때처럼 자신에게 전적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새 인간에게는 '자유의지' 보다 '순종의지'가 더욱 중요한 가르침이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누구에게 바치면 더 잘 들어주신다는 그런 가르침은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기도는 아버지께 청하는(바치는) 것이며,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와 같이 아버지께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이렇게도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말을 더 잘 들어주신다고 그렇게 절대화 시키는 말은 결코 타당하지 않는다 할 것입니다.

모든 기도는 현실의 삶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현실과 기도가 분리된 삶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매일 미사 드리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함께 다니는 사람에게 미사드리러 가거나 그리고 돌아오는 도중에 다른 이를 욕하고 비난하며 자신을 치켜 올리고자 애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는 말씀은 모든 어떠한 기도에서나 현실과 일치되어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삶의 은총 안에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실 때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기도와 현실의 삶이 다르면서도 누구에게 기도하면 더 잘 들어주신다 하고 말하는 것은 '마술적인 미신'에 불과할 뿐입니다.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눈을 열고 다음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이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요한 17,26)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다면 순종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요한 14,3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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