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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부재와 그릇된 생각!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19 조회수516 추천수5 반대(0) 신고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아프리카에서 고생하시며 봉사하는 수녀들에게 기자가 물었다.

 “수녀님 소원이 무엇입니까?”

수녀님은 대답했다.

 “저와 같은 사람이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기자는 숙연해 졌다.

  

 봉사나 사목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봉사를 받고 사목을 받는 사람들과 신자들의 행복한 것이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신다고 하신다.

 

아니 이미 그분은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떠나신 분이신지도 모른다.

 

부재(不在)의 사목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태평성대였던

중국 요순때의 국민들은

군주가 누군지 알지도 알필요도 없다고 했다.

 

모든 것에 다있지만

모든 것에 결국 없는 사람이 있고

모든 것에 없지만 결국 모든 것에 있는 존재가 있다.

 

 전자는

주도권을 잡으려고

쏘다니는 불행한 사람이며 분주하다.

후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 보이나 다 이루는 스타일이다.

  

 나에 대한 관심이 부재(不在)  

즉 없을 때 우리는 비로서 다른 이들에게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섭섭해 하셨다.

  

 아버지께 간다는 말을 했을 때

어디로 가시냐고 묻지 않고 그냥 자신 생각만 하고 근심에 쌓였기 때문이다.

 

 나약함 때문이다.

 나에 대한 관심을 너무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어떻게 자신에 대한 관심이 없을 수 있냐고?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아닌

나약한 자신에 대한 관심을 성서안에서 발견할 때

나약함의 신비 즉 고통의 신비에서 영광의 신비로 넘어간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위대한 처세술은

바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닮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접촉해야한다.

 

오늘 복음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보호자인 성령을 통해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텐데 그릇된 생각이란 죄,의로움, 심판에 관한 것이다.

 

그럼 이 말씀의 내용은 무엇일까?

 

성서 전반을 살펴볼 때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그릇된 생각은 바로 이것이다.

  

자격이 있어야만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다.

대성통곡을 하며 땅바닥까지 자신을 낮추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음을 예수님은 복음에서 보여주셨다.

 

어느 영성가이며 신학자는 말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회개한 것은  

예수님의 눈빛을 바라본 순간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 큰 고통중에서 눈으로 말씀하셨다. “괜찮다!”

 

나는 사제로서 복음을 묵상하다가 사랑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너라면 괜찮아!”

  

복음서에 보면

 세리가 바리사이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의인이라고 평하신다.

 

그가 많이 용서받고  

그 많이 용서받음은 바로많이 사랑받음이라 선언하셨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용서가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앞서는 것이며 선행조건이 된다.

 

이것은 신학의 대원리이지만

 사실 초대 교회공동체의 경험이자 증언이었다.

  

복음은 

 옛날 책이지만  

나에게 지금 새로움을 주는 생명의 책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의 대가로

그의 뉘우침을 기다리고 내가 누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자격이 있어야 된다는 자격지심을 갖고 사는지?

 

이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복음을 통해 하느님 말씀에 접촉되는 시간과 공간을 갖는것이리라!

  

스승의 날 우리는

올바른 하느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보호자이신 진리의 빛이신 성령께 기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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