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속으로

 


이제민 지음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사람들  

 
치유

  독일 함부르크  어느  교회  앞마당에는  붉은 보도블록으로  커
다란  십자가 형상을 새겨 놓았다.  그 블록 한 장 한 장에는  이름
이  새겨져 있는데,  에이즈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선생님 
저 사람이 에이즈에 걸린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아니면 사회의  죄입니가?"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신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요
한 9,1-3)
   저 죽어간 환자들은 그들의 병으로 인해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
을까?  우리 사회는  그들을 그런 안목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저
환자들은 자신들을  백안시하는 사회의 눈을 의식하며 - 만일  그
가 신자라면 - 타인에겐 자기의  수치스런 병을  감추려 하겠지만
주님께는 어떻게든 자신의  병을 부끄럽게 내보이며  낫게 해달라
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매달리지 않았을
까? 깨끗하게 해달라고,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게 해달라고 간절
하게 기도하지 않았을까? 치유의 기적으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
게 해달라고.
   우리는 곧잘 하느님을, 예수님을, 성령을,  마리아를 내 병을 고
쳐주는 도구로 이용하려 든다. 병이 나으면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으로 여겨 감사하고,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도 병이 낫
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는 생각에 원
망하게 된다. 이런 감사는 시간과 함께 잊힐 수 있다. 언제라도 폐
기처분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치유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다.  믿음이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이고,  치유가 그런 인
간의  믿음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 정도일 수 없다.  병에서 치유되
는 일이 없다 해도  하느님의 영광은 드러난다.  하느님의  영광은
병의 치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병을 통해 더 드러난다.  예
수님께서 저 병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
신다면 치유 이전에 믿음을, 질병 안에도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대
한 믿음을 강조한 것이리라. 수치스런 병도 그것이 하느님의 현존
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선물이다.  내 부끄러운 삶을
반성하도록 해주는  차원을 넘어 근원적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하
는 선물이다.  병에서 치유되는 것이 은총일 수 있지만, 병 안에도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더 큰 은총이다.  병이 치유
보다 더 큰 은혜로 인간에게 다가올 수 있다.
   하느님은  좋은 것들 안에서만 당신을  계시하시는 분이 아니다.
원수 안에도,  나의 부끄러운 죄 안에도 당신을 계시하신다.  나에
게 좋지 않은 것은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고 여길 때,  하느님을 만
나는 근원을 없애는 것이 된다.  치유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이런 
것들을 먼저 사랑하도록 하라.  병도 사랑하라. 죄도 사랑하라. 역
설로 들리겠지만 그때 우리는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안아주며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치
유될 일이 있다면  병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모르
는 내 마음이며,  그 사실을 모른 채  치유만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내 마음이며, 은연중에 하느님을 병을 낫게 해주는 마술사로 이용
하려는 내 마음이다.  병중에 내가 드릴 말씀은 오직 이 한마디 말
이다.  "야훼여, 나를 뷸쌍히 여기소서.  나를 고쳐주소서.  당신께 
죄를 지었사옵니다." "내 병이 치유되기만을 바랐던 이 마음, 당신
이 생명의 근원임을 모르고,  당신을 내 병을  고치는 데 이용하고
자 했던 은혜 모르는 이 마음을 치유하여 주소서."
     병을 주신 것을 감사하라!  당신은 새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
을 겪어주었구나."(이사 53,4)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