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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0 조회수68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5월 20일 주님 승천 대축일




Go out to the whole world
and proclaim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Jn.16,15)



제1독서 사도행전 1,1-11
제2독서 에페소 1,27-23
복음 요한 16,15-2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셨지요. 하지만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 뒤 예수님의 행보는 어떠했을까요? 당신을 죽음으로 몰았던 사람들에게 어떤 보복을 하셨나요? 또 당신을 배반했던 제자들에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성경 어디를 봐도 당신을 십자가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을 벌하셨다는 장면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배반하고 다락방에 숨어 벌벌 떨던 제자들에게는 오히려 나타나시어 평화까지 빌어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따라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 나의 반대자를 무조건 미워하고 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으면서도 항상 조건이 가득한 사랑만을 실천하려 합니다. 즉, 내게 이득을 주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주겠다는 것, 나와 연관이 있는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외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사랑을 주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별 상관도 없는데도 시기와 질투를 내세워 용서할 수 없음을 이야기할 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 초등학교 친구 중에 유명 연예인이 있습니다. 아마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요즘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예전 무명 시절에 관심을 끌기위해 했던 막말(?)로 인해서 현재 방송을 잠시 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친구의 말을 이야기하면서 영원히 방송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나 이 친구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사실 방송에서 나온 이 친구의 모습은 제가 기억하는 옛날의 모습과 많이 다릅니다. 방송에서는 독설가로 알려 있지만, 제가 아는 이 친구의 모습은 의리 있고 언제나 예의바른 모습입니다. 바로 방송에서 비춰지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방송의 모습이 원래 모습인양 평가하고 단죄하는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내가 아니면 또 나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단죄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분명 아닙니다. 내 이웃에 대한 평가와 단죄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명을 모두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은 죄지은 사람을 단죄하고 벌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복음을 선포하여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유언이면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의 이 유언을 전혀 지키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행하려고 할까요?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제대로 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셨으면 합니다. 과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지요?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참 제자의 모습입니다.

 
 

작은 것 속에 큰길로 나가는 빛이 있다(박노해).


잘 뚫려 있는 자전거 도로. 서로간의 마음도 이렇게 뻥 뚫려 있어서 잘 소통이 되길 바랍니다.



겸손한 우리.
 

언젠가 어떤 분으로부터 지리산 등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시던지 저는 지리산을 무척이나 많이 등반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얼마나 지리산을 다녀오셨냐고 물었더니만 이제까지 단 한 번 다녀오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날씨가 좋지 않아서 정상인 천왕봉을 밟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리산을 한 10번 이상은 다녀온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긴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리산을 열 번 오른 사람은 지리산을 잘 아는 척 하지만 백 번 오른 사람은 오히려 입을 다문다고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이 아는 척 하는 것,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우리들은 너무나도 잘 쫓아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하는 우리의 모습들. 결국은 스스로 무식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겸손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처럼, 알면 알수록 겸손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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