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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신비여 - 10 . 1987년의 안식년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2 조회수432 추천수6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8. 사목 현장에서 만난 주님

10 1987년의 안식년
내 사제 생활 45년 동안 공식적인 안식년을 가진 것 은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결정한 것이었지만, 주위 환경과 조건 그리고 하느님의 강력한 내적 권고로 1987년에야 처음으로 안식 년을 가졌습니다. 이 안식년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삶의 분수령 이 되었고, 내게 필요한 은총을 풍성하게 받은 시기였습니다. 가는 걸음을 멈추고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며, 주님의 영을 따라 발 길을 돌렸나이다."란 <시편>의 말씀을 중얼거리면서 나는 한 해 동안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첫 번째로 선택한 곳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애틀랜타, 조지아)입니다. 내 나이 50을 넘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좀 더 성숙한 사제생활을 하 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수도원 중의 수도원이라 불리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은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기도한다는 것은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 문에 맑은 정신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수단방법을 다 써본 뒤 2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맑은 정신으로 수 도원 가족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생활에 적응하면서는 '아! 이렇게도 좋은 아침에 왜 잠만 자고 있었던가. 솟아오르는 태양과 함께 잠을 깨는 만물처럼 내 심령도 빛 을 따라 깨어나는 이 아침시간을 잘 선용해서 주님께 봉헌해야겠다.' 고 결심했습니다. 하루에 일곱 시간 정도의 기도 시간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영광송을 합니다. 하루에 대개 60번 정도 하는데 나는 영광송을 입으로 외우면서 마음에 이런 지향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내 생애에 잘한 것은 모두 주님의 은덕이오니 영광 받으시고, 이제 저에게 겸손의 덕을 채워주시어 마음이 가난한 자 되게 하소서.' 2,000번 정도 기도했으니, 겸손한 사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가져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잊히지 않습니 다. 특히 입회한 지 30년 된 전직 경찰관이었던 깡마른 수사가 밤 12시 가 다 된 캄캄한 성당에서 제대를 붙잡고 애타게 기도하는 소리는 아 직도 내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준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주님, 이 미국을 불쌍히 보시고 용서하여 주십시오. 지금 뉴욕 맨 해튼에는 이 시간에도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타락이 자행되고 있습 니다. 눈물로 탄원하는 이 늙은이의 기도를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미국을 불쌍히 보아주시고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곳에서 받은 또 하나의 큰 은혜는 세 번에 걸쳐 총고해성사를 받은 것입니다. 충분한 기도와 성찰을 통해서 회개의 은총을 받았고 내 사 제생활을 되돌아보고 총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에서 해방되는 체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피정을 은혜 롭게 하고자 하는 지향으로 4일간의 단식을 시작했는데 단식 중에 셋 째 날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넷째 날부터는 무감각해졌습니다. 한창 배고픈 2, 3일째는 100미터 밖에서 솥뚜껑을 열 때 나는 냄새도 맡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나는 음식을 왜 먹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식 생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안식년에 맞이한 은총의 샘은 '이냐시오 영성 수련'이었습니다. 수 원 '말씀의 집'에서 신학교 입학 동기 신부의 지도로 가진 30일간의 피 정은 제 영적 여정을 정리한 계기가 되었고, 말씀을 심화시키는 묵상 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체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 아가신 비참한 예수의 죽음'을 새벽 2시에 만난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성당에서 묵상을 했지만 아무런 감동도, 응답도 받지 못하고 돌아온 나는 막 잠이 들려는 순간, 꿈인듯 환시인 듯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에 깜짝 놀라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충격은 너무나 엄청났고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형체 라고는 할 수 없는 예수님의 얼굴 모습과 신음소리, 머리와 가슴, 팔과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집니 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마음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이 기도가 그때 제게 실현되었습니다. 또 다른 은혜로운 축복은 예루살렘 성서학교의 입학입니다. 한 학 기의 짧은 기간이지만, 그곳에서 성경을 다시 읽고 묵상하며, 성서의 현장을 한 주간에 하루씩 방문 - 순례했습니다. 성지 중의 성지이고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했으며 승천하시고 성령 강림이 일어났던 바로 그 현장에서 나는 '다섯 번째의 복음'을 체험했 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오늘이라도 네가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 면 좋으련만, 너는 내 품을 떠나 네 뜻대로 살려고 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마주보는 곳에서 우시면서 기도하던 제 대에서 이 성서를 느낌을 갖고 봉독한 것은 참으로 잊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Via Dororosa)' 가에 빽빽하게 들어선 많은 가게와 상 인들, 거룩함과 돈이 함께 공존하는 현실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그 '십 자가의 길'에서도 보는 것이 참 싫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냉혹함이 안타까웠고, 내 사제의 삶에도 언제나 '현 실'이란 이름의 무거운 걸림돌이 많았던 기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내 영성의 뿌리는 무엇인가?' 안식년에 꼭 얻고 싶은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한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자와 그때 형성되었던 교우촌과 순교 자 후손과 이를 연구하는 연구소, 학자, 수도자를 서울에서 제주도까 지 방문하고 순례했습니다. 이때 고국에서의 체류는 내게 또 다른 삶 의 뿌리를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원시종교의 모습과 인도의 신비주의적인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LA의 일 때문에 중단해야 했습니다. 죽 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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