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제자들은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나? **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2 조회수1,092 추천수3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예수님의 부활사화를 읽으면서 항상 의문이 들었던 것이 있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일 년도 아니고 삼년을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셨는데도 어떻게 알아보지 못할 수 있을까?

삼년 동안 함께 살았던 그 모습이 아니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

그렇다면 몰라도 그 이유가 아니라면 아무리 머리를 짜서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그 때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셨다고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습이 달라지신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묵상해 봅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그것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무지와 몰이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부활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두가이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 계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루카 20,27 이하 참조).

 

바라사이들은 부활을 믿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부활을

믿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그들에게 부활을 알려 주시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예수님의 애타는 마음을 조금 느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기에 제자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해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서

저의 모습을 반성해 봅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냐고 나무라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의 모습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임을 고백하며 반성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 그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은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삼년 동안 그렇게 설명했어도 아직 깨닫지 못했듯이 나의 이웃들도

아직 깨닫지 못한 무지와 몰이해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은 단 한마디도 나무람 없이 세상에 사셨을 때와

똑같이 그들이 알아들을 때까지 교육하시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가능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쉽게 포기를 하는가? "저건 인간되기는 글렀어!"

 

여기서 저는 주님의 오래 참음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그 숱한 날들을 얼마나

나를 보시면서 참아 주셨는가? 그런데 나는 이웃을 얼마나 참아주고 기다려

주고 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부활 체험이 가능했다면,

오늘 우리도 이웃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한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그러면서 내가 알고 있는 고정 관념들을 내려 놓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도 깊이 묵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내 것을 내려 놓지 못하는 한, 예수님의 부활을 알아

듣기는 참으로 여렵다는 사실을 묵상해 봅니다.

 

굿뉴스 성경 검색창에 생각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많은 성경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들의 생각은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요한 16,8)

 

당시에 그렇게 율법을 온전히 다 알았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도 하느님에

관하여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두가이들은 더더욱

더 잘 알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렇듯 한 민족의 빛이라면 빛인 두 계급의 영적인 상태가 이랬다면 민중의

영적인 상태는 암흑,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빛을 먼저 받아 들이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종교 지도자들이 아니라,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면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먼저 빛을 받아 들입니다.

이 사실은 자기가 안다고 하는 것을 그 만큼 내려 놓기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것은 어떻게 결말을 내는가?

나랑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을 본다는 사실입니다.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가 뭐 그리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결국 자신의 앎을 내려 놓지 못하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들일 틈이 없는

것입니다. 내 것, 내 앎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우리들도 똑같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나를 내려 놓고, 주 예수님을 믿고 따라 사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