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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우리 마음을 타오르게 하기 위해![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2 조회수402 추천수5 반대(0) 신고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안식일 다음 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

 

장작을 태우려면 땔감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타오른 경험이 있습니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모님을 만나고

성서의 인물을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은 타오릅니다
.

이 타오름이 바로 신앙의 본질이요 교회활동의 목적입니다

전례는

바로 오늘 이 타오름의 장소요 시간이어야 합니다
.

교회는 전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
.

왜냐하면 사도직 활동의 목적이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 10)“

 

전례생활이

위와 같은 정의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데로 성경전체에 걸쳐

당신에 대한 기록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

그러한 면밀한 검토만 갖고도 부족합니다.

굼뜨지 않는 굳센 신앙과 은총이 필요합니다.

성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면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외적 봉사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지만

대부분 성경의 중요성을 후에는 자연스레 깨닫습니다
.

성경을 모르면 참으로 잠언의 말씀대로 헛대고 헛됩니다.

예수님이 주신 그 뜨거운 말씀이 되어야

성찬례에서 또한 깊은 감사를 드리고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전례안에서 혹은 내자신의 묵상할 때

그말씀을 듣는 내영혼의 가슴에 체온기를 데어보아야 합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저 역시 성경을 잘 모릅니다.


저는 사제로서

평생 묵상하고 배워가며

가르치는 복된 직무를 받았습니다
.

사제들이 이런말을 합니다. “강론만 없으면 사제들 생활은 천국이다!

성직자나

수도자나 신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바로 복음에 대한 자신의 반응입니다
.

우리모두

오늘 엠마오스로 가는

두제자들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

부러움은 바로 가치공유에서 나옵니다.

부러워하는 사람은 바로 매력을 느끼는 것이며,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살아있는 힘은 바로 말씀에서 나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심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뜨거워 지기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날의 복음과 성경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


우리는 개신교에서 갖고 있지 못한 전례력이라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미사에 나온 독서에만 국한하지말고

그날의 독서와 복음뿐 아니라 전체적 맥락을 읽어야 합니다
.

나무만 보지말고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기전에

'오소서! 성령님 당신 진리의 빛을 비취어 주소서

당신께는 생명의 빛을 줏시니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
!라고

다윗 성왕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

성경안에는

삶을 살아가는 하느님이 주신 지혜와

오늘 엠마오스로 가는 두제자가 체험한 그 타오름이 있습니다
.


가톨릭교리서에 보면

성령을 체험하는 시간은 바로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때라고 말하고 성령의 도우심없이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음을 못박고 있습니다
.

우리는 지금 교회안에서 과연 어떤 활동과 생각에 잠겨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자신이 복음화되어 타오르는 것입니다.

자 오늘 성경을 펼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땔감이며 여러분은 성령의 불로 뜨거워 질것입니다.

그불은 바로 모세의 불떨기의 빛이며 오순절 성령의 불꽃입니다.

성모마리아와 성요셉의 공통점은

바로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

성모마리아와 성요셉의 순명은

세상의 순명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


평소 성경을

충실히 묵상하고 관상하는 생활이

바로 그분들을 성가정의 구성요소를 만든 이유입니다
.

성가정은

늘 문제없이 평화롭기만 하는

무탈무고한 환경에 있는 가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우리의 삶은성경을 묵상하기 위한 좋은 묵상의 땔감입니다

.
삶의 희노애락과

오감
(五感)으로 느낀 솔직한 느낌을

예수님과대화하는 것을 영적담화라고 합니다
.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화의 화제안에서

얼마나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을 주제로 선정합니까
?

성경 말씀이

가정의 식탁위에 올려질 때

그것이 바로 성가정의 시작인 것입니다
.

뜨거움이라는 전해지는 온도를 의미합니다.

이 뜨거움은 식지않습니다.

이 뜨거움은 예수님과 함께 묵은려는 희망을 낳습니다.

함께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기본적인 사랑의 욕구입니다
.


 
어느 예수회 출신 주교님께서는

저에게 기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명동성당에서 버스를 타고 연인들의 모습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


 
저는 이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명동성당에 간날 돌아오면서 버스안에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

그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서로의 얼굴에만 집중되었고 행복했습니다
.

만원인 버스의 쏠림도

그들에게는 피곤함이기 보다 행복이었고

몇정거 더 가서 내리고 다시 반대로 버스를 타는 수고로움도 그들에게는 행복이었습니다
.

우리에게

그분이 말씀하실 때와 성경을 풀이해 주실때
!

복음은 분명 뜨거운 마음이 일어났던 순간을 두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저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늘 흰종이와 색연필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려봅니다.

그러면 좀더 뜨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7살난 어느 어린이에게 보고 배운것입니다.

어느날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방문하였는데

저는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어느 한 아이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니
? 하고 묻자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어딘가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

자기 사물함으로 간 그 아이는 스케치 북을 갖고 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예수님 여기 계셔요 하고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아이의 스케치북에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 그아이의 눈으로

그아이의 색으로 그아이의 크기로 표현되었습니다
.


 
예를 들면 물고기 두 마리와 빵다섯개를 주는

꼬마는 의외로 예수님의 키와 똑같았습니다
.


어른의 시각에서는

꼬마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 아이는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는 그 꼬마아이의 마음을 크게 그린 것이고

물고기 두 마리와 빵다섯개가 엄청 크게 표현됨으로써 그 가치를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

순간 저는 정말 뜨거운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아이는 이미 엠마오스를 가는 두 제자의 체험을 하고 있는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관상이나 묵상하면

너무 고차원적이며 힘든것이라는 선입관이 생길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그려보고 느껴본다는 것은 고차원적이며 힘든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저는 그 아이에게

왜 이런 그림을 그렸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빤히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

저는 무안해서

한참을 저의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후회로운 수습을 하지 못한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으로 무마했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행복하게 빤히 쳐다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뭐라고 대답할까요
?

저는 정말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부럽지 않습니까?

엠마오스와 제가 만난 예수님을 그린 그 아이의 행복이!

자 이제 성경이라는 땔감을 가져다가 행복의 불을 지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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