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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난과 하느님의 위로(2코린토1,1-24)/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5 조회수34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2코린토1장

코린토전서에서는 육적인 간음과 우상숭배와 우상숭배에 바치는 제물들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 예화를 들어서 설명 하시고
바오로 사도가 율법하에 있을 때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므로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였지만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성령으로 만난 후에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하고

코린토 후서에서는 영적인 예화를 들어 성경 말씀을 문자로 읽고 먹고
살아가는 것이 육적인 음식이며 성경 문자 안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하느님 뜻을 순종하며 살아 가는 것이 구원이라 말하며

2코린토 3,6에는
'문자는 사람을 죽이나 영(성령)은 사람을 살린다' 고 말했으며 말씀의 열매인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고 자기 약점을 고백하며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님만 자랑하는데
베드로사도는 주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씀 하셨으며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했다고 고백 했으며
바오로 사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죽이고 박해 했다고 고백하며 자랑은 주 예수 그리스도님만 자랑하고
우리들은 우리들의 약점을 자랑해야 한다고 하셨으며

우리들이 육에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남의 결점을 말하며
은사에 있을때는 치유은사를 받은 분이 안수 기도를 했더니
병이 낫았다고 자랑하고 기도를 하였더니 복 받았다고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며 영적인 교만이 올 수 있지만

성령의 열매 차원인 아가페 사랑이 오면 자기 자신을
최대한으로 낮추고 다른 형제들의 결점이 보이면 나도 그와 같은 결점이
있다고 회개하며 결점을 말하기 보다는
형제 안에 있는 장점을 보며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참아 주고
또한 저절로 참아지는 인내의 열매 생활을 하게 되며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핑계를 대지 아니하며
현재에 변화 된 삶을 말로 하지 않고 삶으로 살아 가면서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며
코린토후서에서는 육적으로 보지 말고 영적인 차원으로 보고
신앙 생활할 때 바오로 사도 안에서 이루어진 내용들이
성경을 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사와 축복

복 받는 것은 구약이나 공관복음에서는 물질적인 돈을 많이 받고
오랫동안 육신이 편안하게 잘 살아가는 것을 말하지만
영차원에서는 복음 말씀을 받아 들이고 믿고 살아 가면서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 사랑과 기쁨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 가는 것이 영적으로 축복 받는 것이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님이 계시면서 우리 안에 사랑의 하느님이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평화를 빌고 축복해 주는 것이
영적으로 복을 빌어 주는 것이며

우리들 자녀들에게도 좋은 말과 긍정적인 말을 해 주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 주는 것이며
험담이나 결점을 말해주는 것은 축복해 주는 것이 아니며
그러나 우리들 자녀들에게 훈육할 때는 화를 내지 말고
좋은 말 격려의 말 사랑의 말을 해 줘야하며
미사 시작할 때도
2코린토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길 빕니다.라고
교우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신부님께서 하실 때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 라고 응답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는
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라고
인사하는 것이 주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남을 해치는 남을 무시하는 핑계대는 말은 하지말고
위로와 격려의 말로 성도들 간에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아멘!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2코린토13,13)

환난과 하느님의 위로

마태복음24장에서 성전이 무너질 때 진통이 오고 재난이 오며
실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AD63년에 로마 디토장군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성전을 파괴시키고
예루살렘에 대환난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육신에 장막이 무너질 때 고통과 환난이 오지만 우리들의 육신장막이 무너진 후에
복음 말씀으로 지은 성령이 거처하는 성전이 우리들 안에 이루어졌을 때
하느님의 위로를 받게 되며 육신의 장막이 무너질 때
우리들의 십자가 사건이 이루어지지만

육신이 죽은 후에 기도하는 성전인 성령이 거처하는 성전이
우리들 육신 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느님의 위로를 받게 되는데
이 '위로' 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 '인데
이 말은 '파라클레오' 라는 말에서 오는데
'파라클레오' 라는 말은 부르다 초청하다 간구하다 위로하다 라는 뜻인데 하느님의 부름에 초대 받는 것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것이며
세상에서도 대통령에 혼인 잔치에 초대 받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며
위로 받은 것이며 하느님의 아들 혼인 잔치에 초대 받는 것은
위로받는 일이며 구원 받는 일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떠한 환난이나 박해을 받을지라도 참고 견디면
하느님으로부터 영혼에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아멘!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면 부모,친척과 토지와 재산을 버리고
각자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육차원으로 볼 때는 가족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라는 것은 윤리도덕적으로는 맞지 않는것 같이 보이지만
차원을 달리하여 영차원으로 볼 때는
우리들의 에고인 생각과 마음이 죽고 버리고난 후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하게 됐을 때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오게 되는데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십자가 사건이 있는데
우리들은 고통과 환난을 싫어 하지만 그 고통과 환난을 통과하게 되면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과 참평화가 오게 되므로
매일 매일에 일상생활에서 받은 고난과 가족과 이웃때문에 받은 고난을 참고 생활하면 주님께서는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운 일도 지나고 나면 해결이 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 힘으로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십자가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수난 받고 반드시 죽은 후에 부활과 승천이 오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의
모습으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인 신령체에 모습으로 계시면서 필요한 때에 나타나시며
예수님 승천은 헬라어로 '아나람바노' 또는 '아나펠로' 라고 하는데
'아나 람바노' 는 아나는 위 또는 영 이란 뜻이며
'람바노'는 영접하다는 뜻이고
'아나펠로'는 ' 펠로'는 열매 즉 성령의 열매 라는 뜻인데
성부,성자,성령의 열매이며
말씀의 열매인 아가페 사랑으로 계시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는
우리들 안에 성령의 열매인 아가페 사랑으로 계시며
또한 다른 사람들 안에 사랑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요한복음14,8에서
필립보가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였을 때
필립보를 보고 3년간이나 나하고 같이 있으면서
나를 못 보았단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육체적인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계시는 것을 보라는 뜻이며

요한 사도는 1요한4,1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하시는 것처럼
우리 안에 계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고 느끼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예수님 부활과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강림을
기쁜마음으로 맞이 하면서 마라나 타 아멘!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설명: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영혼은 사탄들이 사람들을 통하여
파괴 시키기 위하여 결점을 말하고 화를 내게 하며
우리들의 욕심때문에 죄를 짓고 고난을 받게 되지만
성경 말씀을 읽고 참고 견디면 우리들 안에 계신
주 예수님께서 승리하여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시편34,19;94,19)

설명: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시편34,19;94,19).

6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설명:
우리들의 육은 고난과 박해를 싫어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반드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
옛 사람인 우리들의 영혼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고난과 환난을 통하여 정화 되며
마치 사금이 순금이 되기 위해서는
불의 화덕을 통하여 녹혀서 순금이 되는 것처럼
우리들의 영혼도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으로 무장하고 믿음의 방패를 차고
성령의 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설명:
바오로 사도가 복음 말씀을 전하다가 박해와 환난을 당했던
예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코린토15,32;16,19 사도행전19,23~40).
8
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겪은 환난을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힘겹게 짓눌린 나머지 살아날 가망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9
사실 우리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이들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0
그분께서는 과연 그 큰 죽음의 위험에서 우리를 구해 주셨고 앞으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께서 또다시 구해 주시리라고 희망합니다.
11
여러분도 기도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리하면 많은 이들의 기도 덕분에 우리에게 내린 은사를 보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코린토 방문의 연기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방문을 연기를 하니까 바오로 사도를 비방하고
박해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사람들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인 사탄이 바오로 안에 계신
사랑이며 빛이신 복음 말씀을 전하는 바오로 사도를 박해하는 것인데
사탄은 오늘날에도 말씀을 전하는 성도들의 결점을 말하고 비방하며 박해하는 일이 있는데

사탄은 하느님의 말씀에 복음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님을 박해하는 것인데
우리들도 복음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들을
비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판단하는 일은 하느님을 비방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세례 받아 원죄 사함은 받았지만 원죄의 여독인 선악으로 살아
가면서 비유 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매일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12
우리의 양심도 증언하듯이 우리가 자랑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곧 우리가 이 세상에서,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 하느님께서 주신 순수함과 성실함에 따라, 또 나약한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처신하였다는 것입니다.
13
우리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만 씁니다. 그리고 나는 장차 여러분이 온전히 알아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14
여러분이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 알아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님의 날에,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듯 우리도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설명:
부분적으로 알아들은 것은 하느님 말씀을 육적으로 보거나
성령의 은사 안에서 자기가 받은 은사 내에서만 알수 있으나
아가페 사랑이 오면 부분적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느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5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나는 먼저 여러분에게 가기로 계획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여러분이 또 한 번 은총을 누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16
곧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가고 다시 마케도니아에서 여러분에게 갔다가,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유다로 떠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17
그런데 내가 이렇게 계획하면서 변덕이라도 부렸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내가 계획하는 것이 속된 동기로 하는 것이어서, 내가 “예, 예!” 하면서 “아니요, 아니요!” 한다는 말입니까?
18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하는데,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20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 합니다.

설명:
“아멘!”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진실이 진실이 그렇습니다 라는 뜻인데
기쁨과 감사와 신뢰로써 찬성하며 그 내용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동의하는 말임으로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아멘!” 하고 응답했을 때 한 사람이 기도하지만
그 내용이 “아멘!” 이라고
응답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성령)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세례 암시)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23
나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불러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에 아직도 코린토에 가지 않은 것입니다.
24
우리가 여러분의 믿음을 좌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의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동료일 따름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믿음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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