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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5 조회수872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5월 25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Simon Peter answered him,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He said to him, "Tend my sheep.
(Jn.21,17)




제1독서 사도행전 25,13ㄴ-21
복음 요한 21,15-19

며칠 전, 어떤 자매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자매님께서는 먼저 이름을 말씀하시면서 기억하느냐고 묻더군요. 물론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일일이 이름을 모두 외운다는 것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글쎄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왜 그러시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이 자매님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7~8년 전에 제가 따님과 채팅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눴던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 당시는 이 자매님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집안에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이렇게 엄마와 떨어져 있던 딸은 우연히 제가 하는 인터넷 방송에 듣게 되었고, 방송 중에 이루어지는 대화방을 통해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딸이 지금 뇌종양으로 많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의 치료가 힘든 상태여서 현재 집에 있는데, 예전 대화방에서의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저와 통화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곧바로 이 아이와 통화를 했지요. 아파서 오랜 시간 동안 대화할 수는 없었지만, 이 통화를 통해 한 때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좋은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내 욕심만 차릴 때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나보다 남을 위한 삶 안에서 ‘우리’라는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 주소록을 정리했습니다. 많이 통화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남겨두고, 몇 년 동안 통화를 하지 않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과감하게 지워버렸지요. 또한 전화번호가 남겨져 있기는 하지만 누군지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 역시 주소록에서 지웠습니다. 그런데 문득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주소록에서 이렇게 오르내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군가가 이러한 말을 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고,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잊혀진 사람이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일까요? 혹시 나의 잘못된 인간관계로 인해 버림받고 잊혀진 불쌍한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인간관계는 바로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운할 수도 있는 예수님의 질문이지만, 성경에서 완전수라고 칭해지는 ‘3’이라는 숫자를 씀으로 인해 완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더 이상 버림받고 잊혀지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들이 해야 실천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가장 적은 욕심을 가진 사람이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다(소크라테스).


어제 자전거를 타다가 멋진 꽃밭을 발견했습니다. 우연한 발견... 우연한 기쁨입니다.



남은 문제 많음, 나는 문제 없음.
 

평소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던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환자 방문을 가서 기도를 하는데 자꾸만 분심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집을 나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오늘 정말 이상하네요. 기도가 잘 안 되고 분심이 계속 드는 거예요. 이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나봐요.”

사실 작은 문제도 없는 가정은 없겠지요. 그런데 왜 자기 기도가 안 되는 것을 이 가정하고 연관을 지으려 할까요? 어쩌면 이 모습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내 탓보다는 남의 탓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지요. 자신의 잘못도 남의 잘못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반대로 나의 잘한 것은 내가 잘나서 잘한 것으로 자랑하려는 마음들.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책임 전가가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며,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모습이 아닌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주님께서 그토록 바라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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