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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을 잠가 놓다 [외부로 나가는 문]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7 조회수379 추천수0 반대(0) 신고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19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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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주제어는 다음의 5가지 말씀으로 선택하여 보았습니다.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죄용서" 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살펴보고 가야할 점이 우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삶에서 '상황이라는 실재'가 존재합니다. 거기에서 가르침(말씀)이 납니다. 상황이 없는 곳에는 이야기(말)의 전개도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상황이 없는데 거기에서 말(가르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불교에서나 유교에서의 가르침을 보면 어떤 어떤 상황에서 이런 저런 가르침을 서술해 놓습니다. 현실적인 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런 가르침에 익숙하면서도 성경 말씀을 대하면 그런 종교하고는 다르게 그리스도의 말씀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아집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분명하게 현실적인 지혜입니다.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전하여지고 있다 할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말씀은 거저 돌맹이 같은 경전의 말씀이 아니라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주는 살아있는 '계시의 말씀'이다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돌맹이 같은 글(경전)이 아닌 생명의 계시이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원하지도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냥 돌맹이 처럼 여겨 머리로 경전을 분석하는 것으로써  그쳐도 되겠지만 만일 그것이 아니다면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위해 계시되어진 살아있는 말씀으로 잘 받아들이며 또한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으로'(하느님으로, 진리의 영으로) 인간(삶)을 해석하여야 한다하고 여러차례 말해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생명을 위해서 계시된 말씀을 '말씀으로' 나(인간, 삶, 세상)을 해석(묵상)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이러합니다.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상태입니다. 왜 두려워할까요. 물론 외부에서 제자들을 미워하고 잡아가며 해치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의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반드시 두려움에 갇히는 것만은 아니다 할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순교까지도 각오하며 결코 외부의 상황에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는 것은 외부의 상태 보다는 제자들의 내적인 마음의 상태에서 더욱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상황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곧 예수님의 말씀(가르침)이 일어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워서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제자들의 마음에 평화를 기원해 주십니다. 뿐만아니라 제자들의 마음 속에 평화를 심어 주시기도 합니다.

자신들을 박해하는 외부의 세력들에 대하여 평화의 마음을 심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박해하는 세상을 미워하고 자신의 힘으로 거기에 대항하고자 한다면 자기 힘이 나약할 때 외부는 항상 두렵기만 하게 됩니다. 인간(자신, 삶)을 해석하는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알 것입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런 상태에서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할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며 제자들 내면에 평화의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 안에 미움 보다 사랑이 커지면, 대항 보다는 평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대결 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이 생기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와 반대가 됩니다. 문을 열게 된다는 뜻입니다. 외부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을 잠가놓고 외부와 단절되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평화의 마음으로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시며 외부를 향하는 사명을 주십니다.그리고 인간의 힘으로서가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십니다."성령을 받아라" 하십니다. 평화의 마음과 하느님의 힘을 가진 사람은 이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는 덧붙혀 말씀하십니다.
"죄의 용서"
입니다.
평화의 마음은 남들을 미워하고 악을 악으로 대항하는 '혁명가의 기질'이 아닙니다. 악으로 악에 대항하는 자들은 악한 자들이기 때문에 악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마음'을 주셨다는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또한 잘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악을 행하지 않았기에 결코 두려움이 생길 수 없습니다. 자신이 당당해 진다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대할 때에 '선'이 성장하는 것이며 평화의 마음으로 결코 세상 외부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어진다 할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며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기를 좋아하는 열등의식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굳게 닫힌 문입니다. 자신의 자만심을 보존하고자 악을 악으로만 대적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전주의자'들이 특히 악을 악으로 대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형식에 얽매이는 율법주의자, 바리사이들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오직 남을 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이 옆에 있으면 공동체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자신이 진짜 신앙인이라며 허구한 날 다툼과 반목이 성할 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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