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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시 '죄의 종살이'를 새로하다 [선행과 마술의 결합]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8 조회수337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10,17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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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말씀에서 항상 생각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기 스스로 구원에 이르고자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을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근거하여 그는 '선한 무엇'에 관하여 가르침을 얻고자 '스승님'으로 불렀다 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무엇' 그리고 '선한 스승님'이라는 연결고리에서 그는 애초부터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보아집니다.주님으로 믿고 자신의 전부를 버려서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단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선한 무엇에 관하여 세상 지혜를 취하고자 했을 뿐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제 자신이 죽은 뒤에는 영원한 생명까지 얻고자 그 지혜에 관하여 자기 재물로 싸고 싶었던 것이다 할 수 있습니다.선한 행실과 스승님이라는 두개의 연결고리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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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라지우스주의 Pelagianism
 
펠라지우스가 주장한 이단설. 원죄를 부정하였다. 펠라지우스는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를 자력으로 실행할 능력이 있으므로 구령(救靈, 영혼을 구함)도 신앙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그것을 쉽게 하는데 은총이 필요할 따름이다고 주장.펠라지우스는 로마에서 수도자로 있었다. 그의 이단설은 고대 윤리학의 정신을 받아들인 것으로 아우구스티노나 후대의 학자보다 인간의 선에 대한 자연적 능력을 높이 평가한 그리스의 교회 글레멘스의 저서 등에도 어느 정도 나타나 있는 사고방식이다.
 
반(세미) 펠라지우스주의 semi-Pelagianism
 
하느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관계에 관한 몰리나의 학설로 몰리나주의라고도 한다. 예수회 소속 신학자인 몰리나는 하느님의 은혜를 2개로 구분하였다. 2개의 구분은 본질적 차이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구분이다. 즉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은혜는 충족적 은혜인데,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구원을 위해 이 은혜가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협력할 때 이 은혜는 효과적 은혜가 된다. 이러한 학설이 펠라지우스의 주장과 유사하여 반(半)펠라지우스주의라 이름 붙였다. 비평가들은 반펠라지우스주의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높게 평가한 나머지 은혜의 우위성을 부정하고 있다 하여 몰리나주의에 빠져 있던 당시의 예수회원들을 비난하였다.

펠라지우스주의는 인간이 하느님 은총의 필연적인 도움없이 자신의 자유의지의 자연적 힘으로, 윤리적으로 선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담의 죄의 영향을 단순히 나쁜 표양 정도로 축소시켰다<교리서 406 >. 세미 펠라지우스주의는 펠라지우스의 아류로써 은총을 일부 인정(수용)하였지만 은총의 우위성을 부정한 것이다. 원류인 펠라지우스와 같은 동질의 주장으로써 인간 각 개인에게 존재하는 의지를 은총보다 앞세우고 인간의 의지적인 힘에 따라 은총이 달라진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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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에는 따르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의지)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성전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대체로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성전을 중심으로 마술적인 미신에 가까운 성전생활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사는 냄새'가 지워졌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며 남들을 판단하고 단죄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길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펠라지우스적입니다.  사랑은 없고 선행만 있을 뿐입니다. '펠라지우스적인 마리애'로 무장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선한 의지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실천 보다도 더 중요시 여깁니다. 그들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를 우선시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에 속박되어 죄를 벗어버리고자 하는 불교의 '업' 정신에 있습니다. 한민족의 고유종교인 불교에서 바탕이 되어 여전히 '죄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스로를 '의인'이다 하고 여기게 하고 그것을 모르는 남들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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