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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카인과 아벨[19]/위대한 인간의 탄생[42]/창세기[5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8 조회수336 추천수1 반대(0) 신고

따라서 라멕은 카인보다 더 악한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야, 칠라야, 내 소리를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나는 내 상처 하나에 사람 하나를, 내 생채기 하나에 아이 하나를 죽였다.(창세 4,23)”

이를 우리는 라멕의 노래(어떤 사람은 ‘라멕의 칼의 노래’라고도 함)라고 부른다.
이처럼 라멕은 잔인하였다.
그가 자랑스럽게 떠드는 난폭함은
가히 인간의 탈을 쓰고는 감히 생각할 수없는 살인마였다.
그의 노래에 담긴 내용에는
살인동기와 그 잔인함이 더 난폭해지고 많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상처 하나에 살인까지, 그것도 유아까지를 죽였다니 가히 성스러운 성경에 기록하기에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성경의 창세기에서 그는 자랑스럽게 그의 아내들에게 노래하듯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앙갚음을 받는다면 보복을 하겠노라고 공언한다.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 
 

일흔 일곱이란 숫자적으로는 헤아릴 수 있지만 정성적인 량,
또는 크기를 나타낼 때에는 ‘대단히 많은 것’, 심지어는 '무한대‘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숫자는 좋은 의미,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에는 그래도 사용할 수 있는 비교 숫자이지만 도적질, 살인과 같은 나쁜 것으로는 사용 그 자체가 부끄러울 지경이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숫자이다.
아니 불가능을 나타내는 숫자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카인의 자손 라멕은 거침없이 사용한다.
앙갚음에 대한 보복이다.
용서가 아닌 응징이다.
칼부림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숫자가 일곱, 즉 ‘칠(7)’이다.
대부분이 좋은 의미이다.
러키세븐(Lucky Seven) 즉 행운의 칠로 심심찮게 사용된다.
성경 특히 복음에서 ‘용서’에 관련되어 그 사용의 중요 사례는
널리 알려진 바로 우리의 삶에 중요한 가르침으로 기억된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지 마라.’라고 가르치시면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카 17,3)’라고 강조하시면서 이와 같이 일곱 번 죄에 일곱 번의 용서도 해야 함을 이르셨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칠이라는 숫자가 적은 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경우에는 큰 숫자이다.
하루에 일곱 번의 용서를 구할 죄를 감히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사실 때로는 그 이상의 죄도 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정상적인 삶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야기 한 죄의 정의에 대해 한번 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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