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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사도의 어머니의 치맛바람과 질투에 대한 잘못된 해석- 허윤석신부
작성자허윤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30 조회수444 추천수7 반대(0) 신고

                            제목: 어느 사도의 어머니의 치맛바람과 질투에 대한 잘못된 해석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2-45

그때에 제자들이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39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

 

복음서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잘못된 해석을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오늘 치맛바람을 일으키십니다.

 

 

다큰 아들 둘을 좌의정 우의정에 봉해 달라는 청탁입니다.

 

 

근데 은밀한 곳에서

 

돈봉투나 선물을 드리는 방법이 아니라 매우 쿨한 방법입니다.

 

 

바로 정면승부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를 포함한 두아들 사도들에게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냐고 질문하시고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확언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른 열제자가

 

언제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한 대목에서입니다.

 

 

만약 그 대답이 주저주저했다면 열제자가 불쾌하게 생각을 했을까요?

 

 

인간은 질투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성경전반에서

 

아담과 이브도 하느님의 능력을 질투하여 그분이 다주신 복을 마다하고

 

하느님과 같아지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었고

 

카인이 질투심으로 첫 살인을 하게 됩니다.

 

 

동생 아벨를 죽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두제자가

 

글쎄요 자신이 없는데요!”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또한가지 그들은 불쾌하게 여길 뿐

 

누구하나 그 감정을 겉으로는 들어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나약함입니다.

 

 

그런데 오늘

 

두 사도의 어머니의 박력있는 댓쉬 즉 치맛바람은

 

한순간의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대답하는 내용을 보면

 

어느정도 준비된 행동이었다는 인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평소에 좋지 않았으면

 

이렇게 자신있게 두 아들이 예수님의 큰 일꾼으로 쓰여질 것을

 

그리고 그 영광을 누리도록 청탁하는 것이 가능하였을까요?

 

 

그리고 엄연히 그 어머니의 두 아들은

 

뒷날 위대한 사도의 두자리 즉 12분의 2

 

혹은 유다 빼고 11분의 2자리를 차지하는 의석수를 보유했으므로

 

이머니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말입니다.

 

 

이 두사도의 어머니를

 

그냥 부정적인 치마바람의 웃고 넘어갈 유치한

 

어느 아줌마의 억센 행동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는

 

복음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2000년 전

 

팔레스틴의 작은 고을에서

 

비천하게 태어난 한 아기가 성장하여

 

동네사람들은 그 아기가 성장하여 청년이 되었을 때

 

그를 우수한 인재로 보지 못했고 심지어 그냥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인식하였습니다.

 

 

많은 기적과

 

좋은 말씀을 선포하였지만

 

그 백성의 지도자들의 질투와 모함으로

 

늘 피해다녀야 했던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예수였고 어머니는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야고버와 요한의 어머니는 그런 청년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었고

 

그 믿음은 오늘과 같은 욕심을 낳았습니다.

 

 

적어도 그 어머니의 욕심은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해서라면

 

체면이라 편법이 아닌 자신의 꿈을 직접 이야기 하는 배포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평소에 뒷빠라지 하고 성모님과도 친하였기에

 

성모님께 먼저 이렇게 제가 정말 청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오늘 예수님께 다소 부담되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가나안의 첫기적인 혼인잔치에서의

 

떨어진 포도주를 많게 하심에서의 성모님의 청탁

 

포도주가 떨어졌구나!”라는 멘트와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경은

 

사실 보도라는 측면 뿐 아니라

 

의미보도라는 측면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 삶의 자리를 읽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가능합니다.

 

 

저는 성령께 기도하면서

 

오늘 복음의 삶의 자리 즉 그 당시의 복음이 전해주는 자리와

 

성경 전반에서 오늘복음의 자리 그리고 지금의 저의 자리와 우리의 자리를 관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

 

 

예수님은 분명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자들 사이에서 그 어머니의 말씀은

 

분열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인제공이었습니다.

 

 

가장 화가 나야 정상인 인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모두 예수님의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두사도의 어머니도

 

그리고 나머지 사도들도

 

모두 어쩌면 자신들의 감정과 희망에만 빠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으시고 가까이 불러 이르십니다.

 

 

바로 섬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배구경기를 갔습니다.

 

팀이 잘 안풀리고

 

모두가 스타가 되고 싶어하고

 

동시에 팀이 우승을 하려하지만 점수가 오르지 않자! 감독은

 

타임을 부르고 선수들을 가까이 불러 뺑 돌려 원을 만들고

 

감독은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물을 건네주며

 

선수들이 가져야할 잊고 있던 초심과 작전을 상기시키며 선수들을 따뜻이 이끕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위대한 교육자이시며

 

동시에 빛나는 스타이십니다.

 

 

저는 많은 외적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의 모습보다

 

오늘 가까이 부르시며 따뜻이 가르치시는 그분의 인성을 바라보면서

 

그분이 참 인간이시며 참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오늘 누구하나 욕할 수 없습니다.

 

 

 

두 사도의 어머니의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제자들의 얼굴

 

그리고 가까이 불러 따뜻이 타이르시는 예수님의 미소!

 

 

구원사업은

 

바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 하는 사업이기에

 

정말 우리는 복음을 묵상할 때 조심하면서 함부로 등장인물들을 판단하지 말고

 

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봐야겠습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꼭 오늘 복음의 제베대오와 요한의 어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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