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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카인과 아벨[20]/위대한 인간의 탄생[43]/창세기[58]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31 조회수323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이 이야기 한 죄의 정의에 대해 한번 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게 죄이냐?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는 다 죄일까?
그럴 런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
죄의 종류도 견해에 따라서는 다양하겠지만 한 마디로 간단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저지른 일, 즉 한 일 중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용서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일차적인 죄이다.
아마도 이것들은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차적인 것이 다 죄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 중에서도 상대방이 그걸 용서해 주는 그 일차적인 것이 죄일 것이다.

이건 나의 입장에서는 죄라고 이야기할지언정
공동의 판단으로 볼 때 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용서를 청한다고 해서 다 죄는 아닐 것이다.
‘그래, 알았다. 됐어.’라고 말하는 그게 죄이다,
용서한다는 뜻이다.
‘아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한거냐? 그것 난 생각지도 않았어.’ 이건 죄가 아니다.


용서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죄는 반드시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이걸 상대방이 수용해 주는 경우에만 죄이다.
따라서 용서의 대상이 대는 것이 죄일 것이다.
 

이게 소생의 죄의 개념이다.
사실 이 죄의 범주도 사람마다 다양할 수도 있다.
성질 급한 시몬 베드로도 우리와는 또 달랐다.
그는 예수님께 대뜸 질문했다.
그는 일곱 번이나 용서해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면서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따져야겠다는 심보인지도 모른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를 들추어내면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예수님은 무한대의 용서를 요구하셨다.
끝없는 용서다.
죄 많은 현대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무한대의 용서를 해야 한다.
용서한 자만이 결국은 용서를 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라멕은 이 무한대의 숫자를 나쁜 의미의 용도로 거침없이 남발했다.
용서 없는 보복이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그는 두 아내를 불러놓고 자신의 악랄함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내뺐고 있었다.
카인이 일곱이고 라멕은 일흔일곱이다.
예수님은 일곱에서 일흔 일곱으로의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지만
라멕은 자신이 저지른 철면피한 죄에 앙갚음을 한다면
반드시 그 이상의 보복을 할 것임을 단언했다.

보복의 악순환이다.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

사실 라멕은 두 아내를 둠으로서 일부다처제의 최초 사람인지도 모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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