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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05 조회수95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Give to Caesar what is Caesar's
and to God what is God's.
(Mk.12,17)



제1독서 2베드로 3,12-15ㄱ.17-18
복음 마르코 12,13-17

지난달 종합검진을 병원에서 받았는데, 검진을 받던 중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소개합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다가 심전도 검사를 할 때였습니다. 정확한 심전도 검사를 위해서 검사소까지 휠체어를 타고 가야 한다더군요. 그래서 저는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심전도 검사소까지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아는 교우분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께서 깜짝 놀라셨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튼튼한 저를 보았는데, 지금 병원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말이지요. 아마도 몸이 좋지 않아서 걷지도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셨나 봅니다.

종합검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해도 그분께서는 좀처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시더군요. 하긴 요즘에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서 쓰러지시는 분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다보니 저 역시도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문득 ‘만약 내게 남은 생명이 앞으로 1년밖에 없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의사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선고를 받았든 혹은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든지 간에, 앞으로 내 자신이 1년밖에 못산다면 여러분은 어떠하실 것 같습니까?

아마도 정신이 번쩍 들겠지요. 그러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것인지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왜 지금까지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는가?’,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는가?’ 등등의 후회를 말이지요.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후회할 행동들을 줄여 나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우선순위를 새롭게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즉, 이 세상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원로들은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세우기 위해서 세금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매국노인 동시에 우상숭배자(세금으로 내는 동전에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가 될 것이지요. 반대로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의 법을 어기는 반역자로 고발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라고 말씀하시지요. 스스로 판단해서 황제의 것이면 황제에게, 반대로 하느님의 것이라면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는 말씀인데요. 이는 모든 것이 황제의 것이라 생각했던 헤로데 당원의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것을 알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매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의 가치관에 얽매어서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나요?

 

잠시 머무르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은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시간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삶을 즐길 더 유익한 시간을... (권미경)


 
운전중에 너무 졸려서 이렇게 셀카 놀이 했습니다. ㅋㅋ



버려지는 아이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철저하게 자기 앞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업에서는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비정한 광고까지 하지 않습니까? 사실 일류가 아닌 사람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고, 또한 당연히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일류가 아니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드는 이 세상은 과연 바른 것일까요? 이런 분위기 안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버림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힘없는 버려지는 아이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8,500여 명의 어린이들이 버려진다고 합니다(2010년). 이는 오늘 하루 동안 23명 정도의 아이들이 버려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로 미혼모와 이혼한 사람들이 아이를 버린다고 하지요. 물론 말 못할 사정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 못할 사정이 어떤 사정일까요? 자기 스스로 내세우는 사정일 뿐입니다. 즉, 자기 상황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힘없는 아이가 자신의 짐이고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만약 아이를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행동입니다.

힘없다는 이유 때문에 버려지는 일이 이제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모든 이가 차별 없이 소중하다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아래에 누가 소중하고, 누구는 필요 없다는 식의 구별 자체가 의미 없는 것입니다. 대신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만이 우리 모두 소중한 사람,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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