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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빨래 좋아하는 얘기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07 조회수532 추천수7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1 "안 된다니까, 그래!"

빨래 좋아하는 얘기
언젠가 미국에서 몇 달 머물 때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 한국에 서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안식년(1년 휴가)을 신청했는 데 뜻밖에도 미국의 교포 교회에서 몇 달만이라도 당신들 교회에 머물러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이 미국이라는 땅을 처음으로 밟게 되었다. 미국은 과연 컸다. 내가 머물던 곳은 플로리다의 남부 관공지 마 이애미라는 지역이었는데 그곳은 산이 없기도 했지만 바닥이 워낙 넓어서 멀쩡한 날에도 사방을 보면 소나기 오는 곳을 몇 군데나 동 시에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비가 올 때도 아주 억세게 왔으며 빗방울도 무지하게 컸다. 도착 다음 날이었다. 몇몇 교포 자매들이 와서 필요한 물건을 좀 사러 가자고 대형 마트로 나를 끌고 갔는데 나는 그때 생전 처음 보는 마트의 규모에 눈이 동그래졌다. 요즘은 한국에도 그런 마트 가 많지만 그때는 정말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슈퍼는 처음이었다. 마트에는 실로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물건은 굉장히 많았지만 그러나 막상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 하니 딱 잡아서 사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또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자매들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몇 번 성화를 댔지만 그러나 너무 많은 탓인지 살 것이 없었다. 나중에 실망한 자매들이 이번엔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한국인 식료품상으로 나를 인도했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그러나 한국 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구할 수 있었다. 라면, 총각김치, 청 국장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고를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식료품 진열대를 돌아 일반 잡화를 진열한 코너를 돌게 되었는데 그때 이것저것 보다가 갑자기 눈에 크게 띄는 것이 있었 다. 나도 그때까지 그것을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그것 이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무로 된 빨래판이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자매들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나 내가 미국과 한국인의 상점에서 구하고 싶었던 것은 정말 빨래판 뿐이었다. 물론 빨래판을 사러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내 관심 은 오로지 그것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것이 너무도 필요 했기 때문이다. 그때 미국 사제관에는 아주 좋은 세탁기가 있었지만 나는 본래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비비고 주물러서 빨래의 때를 빨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 그것은 내 취미요 오락이며 운 동이었다. 창피한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빨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운동 후에 땀에 전 옷을 비누질하여 빨래판에 비벼 빤 다음에 맑은 물에 헹굴 때의 그 개운함과, 방에 설치된 빨랫줄에 빨래를 널 때의 그 즐거움, 그리고 마른 후에 걷어서 개켜 옷장에 넣을 때의 그 편안함은 빨래를 낙으로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신부가 해야 할 일이 가득한데 뭔 할 일이 없어 서 빨래를 하느냐고.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말씀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빨래도 못하고 밥도 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혼자 사는 은혜 를 체험할 수 있겠는가. 비누질과 함께 빨래의 때를 비벼서 빨아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은혜를 모를 것이다. 지난 얘기지만, 내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을 때도 어머니께 당신 의 옷을 맡기지 않으시고 와이셔츠나 양말 등을 손수 빠셨다. 아침 식사도 당신이 직접 찌개를 끓여서 잡수셨는데, 왜 그러시냐고 하 면 아버지께선 그게 오히려 편하다고 하셨다. 빨래나 밥을 할 때 서럽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은 전혀 없다. 나 에게도 주방에서 일하시는 아줌마가 있고 또 부탁만 하면 달려와 서 일해 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속빨래를 맡기지 못하 는 것은 유전도 있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닌가 한다. 지난 3월 한 달 내내는 전국의 나환자 정착마을을 다니면서 피정 지도를 했는데 하루에 두 번씩 이 마을, 저 마을로 가서 뛰면서도 빨래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땟물이 빠져 나갈 때의 그 개운 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좌우간 팔자치고는 내 팔자가 참으로 상팔 자라는 생각을 한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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