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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악연(惡緣)?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08 조회수492 추천수3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1 "안 된다니까, 그래!"

어떤 악연(惡緣)?
광주교구 소속으로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본래는 대전이 고향이 고 또 그곳의 학교를 다녔으며 그리고 거기서 오랫동안 사회 생활 을 했기 때문에 나는 광주교구 신부님들을 잘 몰랐다. 그래서 신학 교에 가끔 찾아오시는 교구 신부님들을 뵐 때마다 참으로 어색할 때가 많았는데, 머리가 벗겨진 늙은(?) 신학생이 있다는 것이 그들 에게는 참으로 신기했던 것이다. 하루는 어디서 중노인 차림의 신부님 한 분이 오셨는데 분명히 우리 교구 분이셨다. 현관에서 둘이 맞닥뜨렸을 때 공손하게 인사 를 드렸더니 그분이 내 대머리를 계속 뜯어보시더니 그러셨다. "뉘 시길래 이렇게 인사를 이쁘게 하실까?" 그래서 내 소개를 간단히 하며 지금 신학교 2학년이라고 했더니 그분이 갑자기 눈을 아래로 깔으시더니 대뜸 그러셨다. "아따, 그놈. 공짜 좋아하게 생겼구나!" 처음부터 내 대머리에 계속 시선을 맞추시더니 결국은 다 뜻(?) 이 있어서 하신 일이었다. 약간은 짖궂은 분이시구나라는 초면의 느낌은 있었으나 그러나 기분이 썩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몇년 후에 신부가 되고 나서 다른 새 신부들과 함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뵈었을 땐 막 회갑이 되신 그분이 술까지 한 잔 직접 따라주셨 는데 그것은 참으로 의외였다. 황송한 마음으로 술잔을 받고 조심스럽게 입으로가져가자 아직 마시지도 않은 나에게 대뜸 "술 적게 마시거라!" 하시는데 술맛이 날 리가 없었다. 기분 같아서는 나도 뭔가 한마디 해 볼까 하는 생 각이 없잖아 있었으나 병아리 신부였기에 꾹 참았다. 그분은 그처 럼 기회만 생기면 남의 가슴을 폭폭 찌르는 것에 마치 삶의 보람과 의미를 두신 분 같았다. 그러니까 '아무개 신부' 하면 전국 어디서고 '아, 그 욕쟁이 신 부', '아, 그 성질 고약한 신부' 하면서 모르는 신부가 없다. 그런데 도 그분을 좋아하는 신부들이 많고 따르는 신부들이 많은 것을 보 면 참으로 묘한 일이다. 언젠가 모 교구의 주교님께서도 그 신부 입에서 뭔 말이 나올지 몰라 당신도 겁이 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그분은 아주 대단한(?) 분이셨다. 그 후로 신부님과 잦은 왕래는 없었지만 내가 초임인 시골본당 에서 기쁘게 사는 것을 보시고는 언젠가 그 악질(?) 신부님이 "나 는 너 보는 것이 참 좋아야!" 하시며 눈을 이상하게 뜨고 째려보시 는데 나는 그분의 친절한 말씀마저도 무슨 함정이 있는지 아주 주 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사고(?)는 항상 '아 차!' 하는 순간에 터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드디어 쉽 게 찾아왔다. 그때 공소로 있던 현애원이라는 나환자 정착마을에서 미사를 끝 내고 점심을 먹는데 그날은 좀 특별한 일이 있어서 몇 임원들과 함께 술을 과하게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염려에서 그 때 술에 잘 타 먹던 위장약인 '맥소롱' 을 박스로 주문하여 두 병씩 을 한꺼번에 마셨는데 어이없게도 우리가 마신 것은 위장약이 아 니라 꼭 그렇게 생긴 멀미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 갑자기 졸음이 엄습한 나는 수녀님들의 권유로 수녀원에서 쉬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악명 높은 신부님이 당신 동창인 주교님을 모시고 정착마을을 방문하셨다가 수녀원에 들르신 것이 었다. 이때 수녀님들이 당황하여 술에 취한 나를 깨웠으나 내가 좀 처럼 눈을 뜨지 못했으며 또 일어나긴 했어도 비틀비틀 도무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내 운명(?)은 그분 손에 들어가게 되 었다! 사실 나는 그때 누가 다녀가신 줄도 몰랐다. 그분들이 가신 다음 에 나는 다시 회장 집에 가서 눈을 붙였는데 나중에 잠을 깨고 보 니 새벽 한 시였다. 이런 일은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도대체 점 심 때 술을 마시고 낮잠을 잔 것이 그 이튿날 새벽에야 눈을 뜨다 니 ---.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술을 마셨던 다른 이 들도 모두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그 주범은 멀미약 열 병이었다. 신부님은 그때 은퇴 후에 정착마을에서 나환우들과 함께 지내 실 계획이었다. 그래서 미리 한 번 답사를 오신 것인데 바로 그 상 황에서 내가 결정적인 실수로 그분 눈에 찍혀 버렸으니 그 결과가 온전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론 나를 만날 때마다, 그리고 옆에 누가 있거나 없거나 뜯고 찍는 말씀을 아주 신명(?)나게 하셨다. 그것 도 십 년이 넘게. 자업자득이라 나로서도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 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인복이 좋으셔서 주방에 있는 언니가 얼마 나 좋은지 모른다. 그 성미 고약하고 까다로우신 분을 마치 친정 아버지 모시듯이 아주 정성껏 모신다. 내 생각엔 어떤 여자고 그 신부님에게는 붙어 있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도 궁합(?)이 맞는 것인지, 오로지 그 신부님만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여자처 럼 언니는 참으로 지성이다. 그래서 신부들이 가끔 모이면 노인 신부님의 건강을 염려하다가 도 주방언니에 대한 칭찬도 함께 하게 되며 그리고 신부님이 앞으 로 얼마만큼 더 사실 것인지에 대한 화제를 불쑥 던지기도 한다. 한번은 그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내가 "젊어서는 성질이 고약하더 니 늙어서는 또 일찍 죽지도 않는다" 라고 하자 그분에게 한 번쯤 당했던 신부들이 죽어라 하며 웃었다. 그런데 그 얼마 후였다. 안부인사차 찾아간 나에게 "야, 강길웅 아! 아무개 신부가 내가 늙어서도 빨리 죽지 않는다고 소문내고 다 닌다더라" 하시며 약간은 서운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그 '아무개' 라는 신부의 이름은 내가 아니고 다른 신부였다. 그건 분 명히 오해인데도 신분님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셨다. 오히려 나 에게는 '이뻐 죽겠다' 는 말씀만 몇 번 하셨다. 일이 이쯤 되니 신부님한테 맞을 때보다 신부님을 때린(?) 것이 더 아프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이실직고했으면 문제가 덜 했을 텐데 타이밍을 놓치고 보니 농담으로 악 담을 한 번 한 것 이 보통 찜찜한 게 아니었다. 양심도 편치 않아서 이웃 신부에게 살짝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신부는 오히려 무척이나 재미있어하면 서 절대로 사실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충고를 했다. 지난 여름에 신부님을 다시 뵈었을 때는 더 건강해 보이셨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고, 만날 때마다 아찔한 불안감을 떨치진 못 하지만 그러나 석고대죄를 할 만한 용기가 아직은 내게 없다. 만일 의 경우 내 운명(?)이 어찌될지는 생각만 해도 위험스럽기 때문이 다. 좌우간, 정(情)은 때리거나 맞아서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 신부님의 거실에 매달린 액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좋다"(전도 7,1). 어떻게 해석하면, '맞는 것이 때리는 것보다 좋다' 는 의미일 수 도 있겠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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