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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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자든 빈자든 모두 자신이 가난하다고 말한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09 조회수343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12,38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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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기부하는 일들이 매스컴에 오릅니다. 어떤 사람은 1억원을 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1만원을 냅니다. 사실 세상적인 계산에 따라서 생각해 보면 1만원 보다도 1억원의 쓰임새 가치가 훨씬 더 높다 할 것입니다. 우선 수치상으로만 따져 보더라도 한 사람의 1억원은 1만원의 일만명과 맞먹는 것입니다.

만일 1억원이 필요한 빈곤자들에게 요구되어지는 1만원의 착한 이웃 사람들은 일만명이되어야 하겠지만 1억원을 기부하는 착한 이웃이 있다면 단 한 사람이라고해도 족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보면 부유한 자의 기부는 가난한 자의 기부 보다도 더 나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자기의 풍족한 재산에서 얼마의 기부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따로 떼어놓지 못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부자일수록 더 심하다는 말이 과연 틀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빈자들이 같은 가난한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지금에 와서 달라져 갑니다. 빈자들은 가난해서 자기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습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나눔을 강요합니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은 정말로 가난해서가 아니라 현대의 현금만능주의에 따라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입니다.

이런 가난한 자들은 참으로 비열한 세상 거지의 속성을 지닙니다. 세상 거지들은 자신의 것을 남에게 나누어 내어주지 못합니다. 자신들도 먹을 것이 부족한데 어떻게 남에게 줄 것이 있느냐는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가난한 과부와 같은 훈훈한 인정은 이제 옛날일 뿐입니다. 오히려 부자에 대한 적개심으로 무장합니다.

부자는 부자라서 나누지 못하고 빈자는 빈자라서 나누지 않으려 합니다.부자들이든 빈자들이든 모두 자기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여깁니다. 부자들은 욕심이 차고 넘쳐서 가난하다고 여기고, 빈자들은 물욕이 점점 더하여 자기가 가난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어져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절하면 세상 영광을 주겠다' 했는데 세상을 보는 인간은 세상에게 절하는 인간이 되어 세상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되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하면, '돈에게 절하면 돈의 영광'을 주겠다는 광야의 유혹과 같은 돈의 유혹은 결국 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설명인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보는 인간'은 세상의 지배를 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인간을 보는 세상'은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세상을 보는 인간인 '세상 인간'은 인간을 보는 세상인 '인간 세상'으로 변모되어가야 합니다. 인간은 세상의 지배를 받는게 아니라 인간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지배를 받는 인간(세상 인간)이 아니고, 인간의 지배를 받는 세상(인간 세상)이어야 합니다. 이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바꾸어야 하는 일입니다.어떤 인간으로 변화되어야 할까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성경 속의 가난 /  참된 거지
 
◆ 가난 ◆ 가난이란 물질적 결핍보다는 청빈(淸貧), 소박(素朴)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복음삼덕(福音三德)의 하나로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생활을 의미하며 이 때에는 물질적 결핍의 관점보다는 물질적 소유욕망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취한 단순 소박한 생활모습이다.  -가톨릭대사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행복의 첫째 조건 (산상수훈) = 정치경제적 측면에서의 세상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서 발생하는 그런 '가난한 약자'가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과부'(비록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내어 주는 참된 가난한 자)에서 처럼 예수님께서는 "마음(영)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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