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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10일 야곱의 우물- 마르14,12-16. 22-26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0 조회수433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2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2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희에게 빛을 비추시어 성체와 성혈의 거룩하고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한 죄수를 대신해 돌아가신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이런 감동 어린 이야기의 조연이 어떤 죄수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면 단순히 감동으로만 그치게 될까요?

오늘 말씀은 과월절에 대한 준비(마르 14,12-16)와 함께 최후의 만찬 이야기(22-26절)로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자 당신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놓으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고자 준비하셨던 생의 마지막 시간은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12ㄱ절)이었습니다. 과월절은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누는 축제이며, 무교절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는 축제입니다.(신명 16,1-8; 탈출 12,1-20 참조) 그러나 과월절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의 해방이라는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현재화하는 축제(anamnesis)이기도 합니다.(탈출 13,8-10; 신명 6,20-25 참조)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마르 14,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낼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십니다. 마르코는 제자들한테 파스카 축제를 준비시키는 예수님의 선견지명을 강조하고 있지만(13-16절) 일반적으로 물을 긷는 것은 여자들이기에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13절)는 약정된 표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방을 빌려 쓰면서도 “내 방이 어디 있느냐?”(14절)고 물으시는 것은 임금이 왕권을 발휘하여 무엇이나 징발해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분도 만물의 주님으로서 전권을 행사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11,3; 12,37; 1사무 8,11-17 참조)

그러나 정작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음식인 어린양의 고기와 쓴 나물을 먹었다는 어떤 암시도 없는데(민수 9,11-12 참조), 이는 마르코가 최후의 만찬이 곧 과월절 식사였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르 14,22-26) 예수님이 내어 주시는 ‘몸과 피’는 전인적으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또 “잔을 들어… 모두 그것을 마셨다.”(14,23)는 것은 ‘주님의 종’이 온 백성을 위해 죽는 것처럼 ‘많은 사람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는 죽음의 잔이며 동시에 구원의 잔임을 뜻합니다.(24ㄴ절; 10,45. 참조: 이사 53,11-12; 시편 23,5; 116,13-15)

오늘 제1독서의 ‘계약의 피’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 친히 속죄의 제물인 과월절의 어린양이 되시어 당신의 성혈로 계약을 맺는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가 되십니다.(탈출 24,8; 예레 31,31; 1코린 11,25; 히브 9,15ㄱ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서 ‘떼어 주시는 몸’, ‘피의 잔’을 받아 나누어 먹고 마심으로써 그분과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맺으며 그분과 하나가 되고 그분의 운명에 동참하게 됩니다.(마르 14,22ㄴ.23)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대속적인 죽음이라는 종말의 시간 앞에서도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써 도래하게 될 메시아 잔치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드러내십니다.(25절. 참조: 이사 25,6-8; 묵시 19,9) 그러므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부른 찬미가(시편 114-118장)는 단순히 유다인들이 과월절 식사를 끝내며 불렀던 감사를 넘어서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해도 메시아의 잔치를 확증하는 사람만이 드리는 사랑의 희망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마르 14,26) 이는 과월절이 최후의 만찬으로 완성되며, 현재의 고통을 넘어 미래를 보고, 다가오는 승리에 대한 감사로써 하느님께 드리는 어린양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묵상(Meditatio)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24ㄴ절) ‘많은 이를 위해’ 흘리는 피에는 정결과 부정, 의인과 죄인을 수용하는 일치의 자리만 있을 뿐 너와 나를 가르는 ‘나만’을 고집하는 자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는 제 안에 ‘너만은 안 된다.’고 격리하며 밀어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참으로 밀어내야 할 것은 이웃이 아니라 제 안에 자리하고 있는 부정과 죄악, 탐욕과 교만은 아닐는지요?

기도(Oratio)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 116,12-13)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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