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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0 조회수728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6월 10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He took bread, said the blessing, broke it, gave it to them, and said,
"Take it; this is my body."
Then he took a cup, gave thanks,
and gave it to them, and they all drank from it.
He said to them,
"This is my blood of the covenant, which will be shed for many."
(Mk.14,22-23)



제1독서 신명기 24,3-8
제2독서 히브리 9,11-15
복음 마르코 14,12-16.22-26

어제 약속이 있어서 전철을 타고서 이동 중에 있었습니다. 제 앞자리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그런데 남자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자는 머리 손질을 하고 거울을 보는 등 계속해서 딴 짓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3자인 제가 봐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여자는 남자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자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지 화를 내며 “내 말 듣고 있어?”라면서 언성을 높이며 말하더군요. 그러나 여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멈추지 않은 채 아주 간단히 “응”이라고만 대답하더군요. 이 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뒤의 이야기는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예상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긴 요즘에는 제대로 듣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많이 하는데, 열성을 다해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앉아서 휴대전화만을 만지작거리면서 딴 짓만 하고 있으면 화가 나면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맙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청년들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면 이러한 장면들을 종종 목격하게 되지요. 이럴 때에는 많은 것을 전달해 주고 싶어도 말을 짧게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피해는 학생들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것이지요.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예의의 차원을 뛰어넘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습관이 주님 앞에서도 똑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당연히 그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라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따르기보다는, 자기가 관심 가지고 있고 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다보니 주님의 모든 말씀이 쓸데없는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는 소용없는 말씀처럼 평가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인 오늘,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잘 듣고 실천했었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성체를 매 미사 때마다 모시면서 주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 정성껏 받아 모시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혹시 그냥 습관적으로 받아 모시고, 그냥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말씀하시며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의 심정을 떠올려보십시오. 죽음의 순간, 어떻게 보면 가장 긴장되고 위급한 순간에서도 우리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그 사랑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또 주님의 말씀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요?

이제는 주님의 마음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충실한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란 그 자신이 만든 건축물이다(루이스 네벨슨).


어제에 이어 성모상.



행복의 조건
 

9세기에 세계를 지배했던 사라센 제국의 압둘 라만 3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왕국을 49년간 통치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의 수입은 3억 달러에 달했고,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3,321명의 아름다운 왕후들을 거느렸고, 616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동안의 영예로운 통치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은 단 14일 뿐이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했던 날은 얼마나 되었던 것 같습니까?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과연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은 **일 뿐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쉬워하시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앞선 압둘 라만 3세의 경우처럼 세상을 다 가진다고 해도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 안에서 충실할 때 매순간 저절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님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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