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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3 조회수914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Whoever obeys and teaches these commandments
will be called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Mt.5,19)


제1독서 열왕기 상권 18,20-39
복음 마태오 5,17-19


어느 인도의 시인은 이렇게 시작하는 시 한 편을 남겼습니다.

“물속의 고기가 목마르다는 말에 나는 웃었네.”

이 시를 상상해 보세요. 물고기가 물속에서 목마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쩌면 물속에서 목말라하는 물고기와 같지 않을까요?

행복 자체를 이 세상의 감각적인 쾌락, 재미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행복을 얻지 못하자 좌절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이런 식의 타협점을 찾습니다.

“일을 바꾸면 행복할거야. 누구와 결혼을 하면 행복할거야.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거야.”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타협점에 이르렀을 때 정말로 행복했습니까? 사실 오히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더 행복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행복이란 새로운 것들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바로 하느님의 일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지요. 그리고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고 가르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기본 정신은 바로 사랑이지요. 따라서 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이라도 소홀하지 않는 사람, 매순간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하늘나라의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옷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당신 옷이 타고 있어요.”하고 소리를 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나도 알아요. 당신들 눈에는 내가 지금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게 안 보입니까?”

이 사람 옷의 불은 과연 비가 내려서 꺼질까요? 우연히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님께 해달라고 하면서 성가시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의 실천은 바로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먼 미래에 여유가 되면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야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부유해지거나 위대해질 의무는 없다. 그리고 현명해질 의무도 없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성실할 의무가 있다(벤저민 루드아드).



어제는 인천의 장기동성당에 다녀왔습니다.



다투지 않는 방법...
 

40년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한 번도 다투지 않은 두 수도승이 있었다. 정말 단 한 번도 그들은 다툰 적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수도승이 다른 수도승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한 번쯤 다툴 때가 되지 않았나? 어떻게 생각해?”

다른 수도승이 대꾸했다.

“좋아, 당장 해보자고! 무얼 가지고 다툴까?”

“이 빵 조각, 어때?”

“좋아, 그럼 이제부터 이 빵 조각을 놓고 다투어보자고! 자네가 시작하게.”

한 수도승이 말했다.

“이건 내꺼야. 내 빵이라고!”

다른 수도승이 말했다.

“그래? 그럼 자네가 그 빵 먹게나.”

이 두 수도승은 과연 싸울 수 있을까요? 다툼은 서로 간에 소유를 주장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유를 양보하고 나누려고 할 때, 다툼보다는 평화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다투겠습니까? 아니면 나의 평화를 위해 소유를 나누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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