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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생 목표 - 6.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4 조회수43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2.6.14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열왕 상18,41-46 마태5,20ㄴ-26

 

 

 

 

 




평생 목표

 

 

 

 

 



우리의 평생 목표이자 과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게 유일한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라고 은총으로 주어진 인생입니다.


하여 우리가 수도원에 온 것도 무엇을 하기 위해(to do)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to be) 온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우리 삶의 목표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간절하고, 치열하고, 절실한 삶을 살 때

이런 거룩하고 자비롭고 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독서의 엘리야는 물론 교회의 많은 성인들이

이의 모범입니다.



이분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라는 완덕에로, 성덕에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 낮아지고 낮아져

흙 같은 겸손한 사람이 됨을 의미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가톨릭이전에 그리스도교인 이었고,

그리스도교인 이전에 종교인이었고, 종교인 이전에 사람이었다.’ 라는 말도

바로 완덕에 도달한 그분의 인품을 말해 줍니다.

 



말없이 깊고 평범하며 한없이 편안하고 넉넉한 흙의 품입니다.



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생명을 키워내는

하느님의 덕을 닮은 흙 같은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흙(humus)에 어원을 둔 사람(homo)이요 겸손(humilitas)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묵상했습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라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은 바로 이런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고 항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의 자세로

하느님 중심의 간절하고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 드려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리며 하느님의 품이 되어 흙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아예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바보라 하거나, 멍청이라 하는

마음의 살인과도 같은 멸시의 마음을 없앤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면 예물은 제단에 앞에 놓아두고

지체 없이 물러 가 먼저 그 형제에게 화해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 화해, 이웃과 화해, 자연과 화해, 나와 화해,

심지어는 죽음과도 화해한 사람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렇게 사신 참 사람의 모범이시기에

참 하느님이자 참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역시 참 나의 완덕에 도달한 하느님의 사람이요

그 중심에 끊임없는 기도가 자리 잡고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간절하고 치열하고 절실한 엘리야의 삶과 기도가 한없는 감동입니다.


어제 혼자 450명의 바알의 예언자들을 물리친 것도

그의 간절한 기도의 은총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 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은 엘리야의 이런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불을 내려 주심으로

바알 예언자들에게 완승을 거두게 하신 후

이어 가뭄의 땅에 흡족한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독서의 엘리야에 관한 다음 묘사는

그의 간절한 기도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엘리야는 자기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쪽을 살려보아라.” 하고 일렀다.


시종이 올라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엘리야는 일곱 번을 그렇게 다녀오라고 하였다.’

 


일곱 번의 당부가 상징하는바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이어 큰 비가 내렸다 합니다.

 



아침 성무일도 여호수아기 독서(여호5,13-6,21) 때도

여호수아 역시 간절한 기도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일곱 이라는 숫자는 완벽하면서도 항구한 노력과 기도를 상징합니다.

일곱 날을 예리고 성을 도는 데 여섯째 날 까지는 하루 한 번,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을 때

그 강고하던 예리고 성은 무너졌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마음의 가뭄을 해갈시켜 주시고

당신을 닮은 참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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