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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객여운(佳客如雲)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6 조회수536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2 가객여운(佳客如雲)

가객여운(佳客如雲)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은 내게 있어 종일 강론을 준비하는 날로 아주 큰 이유가 아니면 방문이나 외출을 삼가고 있는 날이었다. 그 때문에 누가 찾아오는 것조차 반 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우연히 사제관 내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뜻 밖에도 그곳에 훈이 엄마가 아주 해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런 데 왜 노크도 없이 그녀가 그곳에 들어와 앉아 있는지 예감이 안 좋았다. 나는 그 당시(1983년도)에 광주교도소 지도 신부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훈이라는 서너 살 짜리 꼬마는 그 자매가 교도소에서 낳은 아들이기에 어떤 연민의 정도 있어서 교도소에서 미사를 할 때마 다 과자를 사다 주곤 했었는데 얼마 전에 출소하여 경기도 성남 어 딘가에 새 살림을 차렸었다. "웬일입니까?" 나도 당황했지만 그쪽도 상당히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아무래도 직접 돈을 가져오는 것이 도리다 싶어 남편과 함께 왔는데 남편은 지금 광주에서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다" 라는 것이었다. 훈이 엄 마는 그동안 나한테 두 차례에 걸쳐 45만 원을 빌려 갔었다. 훈이 엄마가 무슨 죄목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후에 들은 얘기로는, 전 남편과 헤어졌고 출소 후에는 교도소 에서 사귄 남자와 동거생활을 했으며 내가 있는 노안까지 찾아와 혼인을 하겠다고 하기에 주례까지 서 줬는데 남편 된 사람도 같은 수인으로서 성가대 지휘를 했던 자였다. 두 사람은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였다.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는 모습이 참 좋게 보였다. 그래도 서로가 과거에 죄가 있었던 자들이 라 각별하게 따로 불러 행복하게 살라는 당부를 했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염려 말라며 교도소에서 함께 고생한 사이니 죽을 때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다며 다짐까지 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내 마음은 자랑스럽기가 그지없었다. 사제생활 의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기쁨과 함께 그들 부부가 아주 미덥 게만 보였다. 특히 대한민국 천지에서 자기들을 받아 줄 분은 오직 강 신부님밖에 없다는 대목에서는 이쪽에서 고마운 생각마저 들었 다. 그들이 결혼한 후 다섯 달이 지난 뒤였다. 훈이 엄마가 갑자기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남편이 취직이 되었는데 보증금이 모 자란다고 울상을 지었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가구 공장에 취직이 되었는데,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었던 전남대학교의 모 교수님이 알선해 주셨다고 했다. 듣고 보니 잘된 일이었다.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본인이 또 새 직장을 좋아한다고 하니 참으로 잘 된 일이었다. 그래서 모자란다 는 돈 17만 원을 20만 원으로 채워 주면서, 돈은 갚지 않아도 되니 걱정하지 말고 잘 살기나 하라고 했다. 그래도 훈이 엄마는 굳이 1주일 후에 갚아 드린다고 하면서 다시 오겠다고 했다. 약속한 대로 훈이 엄마는 1주일 후에 다시 왔으나 꼭 갚겠다던 돈은 가져오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그 사이에 아이를 또 낳았는 지 땀띠로 범벅이 된 갓난아이는 업고 그리고 훈이는 걸리면서 찾 아 왔는데, 오히려 돈 25만 원을 더 꿔 달라고 했다. 사글세방에서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 하나를 믿고 경기도에서 달려온 그 녀를 생각하니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신협에서 돈을 차용해 빌려 주면서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니 꼭 갚으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1주일 후에 남편이 봉급을 타니 염려 마시라고 하면서 꼭 갚아 드 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바로 그 약속의 날에 훈이 엄마가 어김없 이 찾아와서는, 남편이 지금 내게 갚을 돈을 가지고 광주의 모 다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갑기도 했지만 그러나 주일 강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돈은 나중에 우편으로 보내라 고 했으나 훈이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광주에 다녀오자면 적어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려야 하는데 나 에겐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훈이 엄마는 나를 설득하기 를, 교도소에서 함께 출소한 몇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들도 지금 남편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내키지 않은 발길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큰 맘 먹고 광주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함께 차를 타고 가던 훈이 엄마가 갑자기 볼일이 있다면 서 중간에 내리더니 자기는 몸이 안 좋아 성당에서 기다리겠다며 나보고 혼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뭐가 뭔 말인지 모르던 나는 차라리 잘됐다 싶어 한참을 차로 달려서 약속된 광주 역전의 모 다방에 나갔다. 그러나 나를 기다린다던 그녀의 남편은 거기에 없었다. 바쁜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불유쾌한 일이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마 음은 왠지 속은 것 같은 어떤 불길한 예감을 떨굴 수가 없었다. 그 때 내 눈에 문득 벽에 걸린 한 족자가 들어왔다. 글씨였다. '佳客如雲(가객여운)' 뜻은 아마도 '귀한 손님이 구름처럼 다녀간다'는 말 같은데 그때 문득 '내가 이 다방의 가객이냐, 아니면 훈이 엄마가 나의 가객이 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훈이 엄마와 그 남편으로 인해 내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분노가 갑자기 솟구쳤지만 그러나 애써 좋게 해석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40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본당으로 전화를 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으며 나중엔 너무 화가 나서 쪽지만 남겨 놓고는 그냥 나와 버렸는데 마음이 영 찝찝했다. 약속을 일방적으로 해 놓고 얼굴도 내밀지 않다니, 소행이 참으로 괘씸했다. 광주에서 다시 시골로 돌아가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본당 에 가면 틀림없이 훈이 엄마가 뭔 거짓말을 둘러대며 날 다시 기다 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게 싫어서 일부러 나환자 정착마 을인 공소에 들러 그곳의 수녀원을 찾았다. 공소에 계신 수녀님들은 참으로 가난하고 겸손하신 분들이라 뵙 기만 해도 마음이 편했다. 전에 내가 수녀원 전체 피정을 지도할 때 만난 적도 있어서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다행히 수녀님 들이 계셔서 그분들과 함께 수박을 먹으며 웃다 보니 훈이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어느새 사라지게 되었으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마음이 개운했다. 그런데 수녀원을 나서다가 문득 본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훈이 엄마가 궁금해서 사무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사무장이 몹시 미안 하다는 투로 "방금 훈이 엄마 편에 35만 원을 보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아니, 35만 원이 뭔 말이냐" 하고 물었더니 사무장이 설명하는 내용은 이랬다. 내가 떠난 얼마 뒤 훈이 엄마가 헐레벌떡 본당에 다시 찾아와서 는 신부님이 지금 자기 남편 때문에 법원에 잡혀 있다면서 벌금 35만 원을 마련해 달랬다는 것이었다. 사무장도 이상한 예감에 나 름대로 3시간 이상 버텨 봤지만 나중엔 신부님이 곤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훈이 엄마에게 돈을 줬다는 것이다. 그랬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속이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 어떻게 수녀님들과 헤어져서 차를 탔는지 모른다. 너무 충격을 받은 탓인지 거의 넑이 나간 채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려가는데 그때 맞은편에서 오는 택시 안에 서 누군가가 얼른 엎드려 숨는 것이 보였다. 이상했다. 그래도 나는 처음에 그게 뭘 뜻하는지 몰랐다. 다만 차가 교행할 때 그냥 무심코 슬쩍 뒤를 돌아보니까 글쎄 저쪽에서 훈이 엄마가 숨었다 일어서면서 역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앞 쪽으로 달리고 그 차는 내 뒤쪽으로 달리고 있었기에 시골의 좁은 길에서 차의 방향을 어떻게 바꿀 수가 없었다. 그 길은 본래 광주에서 노안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것을 훈 이 엄마도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광주에서 돌아오는 나를 만날지 도 몰라 다른 길로 도망치고 있었는데 바로 그 길에서 나를 만났던 것이다. 조금 더 가다가 공터가 있는 자리에서 차를 간신히 돌렸으 나, 그러나 추격하기에는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 시간까지도 훈이 엄마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결혼도, 취직도, 그리고 사글세방도, 뿐만 아니라 내게 돌 려주겠다는 돈까지도 순진하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처음부터 사기요 거짓이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그동안 다른 신부님들이 '훈이 엄마' 문제에 대해 나에게 충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불쌍하게 보여도 쉽게 도와 줘서는 안 된 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사람 나름이지' 하면서 훈이 엄마를 믿었으며, 혹 내가 속는다 해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을 사람들이 라고 얘기했는데, 막상 속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너무도 가증스러 웠다. 어떻게 본당의 사제관까지 도착했는지 모른다. 염치가 없어진 사무장은 코가 쑥 빠져 있었으나 우선 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사무장도 일찍이 나에게 충고를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웬 전화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전화 받을 분위기가 아니었 지만, 그러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으니 뜻밖에도 훈이 엄마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려 왔다. "신부님, 죄송해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 자 전화벨이 다시 울리면서 훈이 엄마가 재차 나왔다. "신부님, 한 달 후에 꼭 찾아뵙겠어요." 뻔뻔한 여자였다. '꼭 찾아뵌다' 는 말은 사기 치러 다시 오겠다 는 뜻으로만 들렸다. "다시 오실 것 없습니다. 잘 가시고 잘사세요." 그 말을 하고 나자, 지금까지 착하게 보이고 자랑스럽게 여겨졌 던 훈이 엄마의 얼굴이 갑자기 사기꾼, 도둑놈의 얼굴로 밀려왔다 가는 다시 사라지는데 그때 광주 역전의 모 다방에 걸렸던 족자의 글이 퍼뜩 떠 올랐다. '佳客如雲(가객여운)' 어차피 뜬구름 같은 인생이다. 사람이 남을 속이고 살아서야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용서 못 받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이며 또 용서를 못 하는 마음은 얼마나 큰 지옥인가. "예수님, 없어진 것은 얻은 것으로 알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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