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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꿈나무 - 6.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7 조회수37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6.17 연중 제11주일 에제17,22-24 2코린5,6-10 마르4,26-34

 

 

 

 

 





하느님의 꿈나무

 

 

 

 

 




얼마 전의 유쾌한 기억이 생각납니다.

약 20년 전 남편을 사별한 자매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사별한 이후로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늘 수도원 일을 내 일처럼 해 오신 자매님께 강복을 드리며 한 말입니다.

 


“형제님은 천상에서 잘 살고 계시고,

  자매님은 여기 지상에서 잘 살고 계시니 행복하십니다.

  그러니 기뻐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바로 이게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축복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주님을 떠나 몸 안에서 사는 우리들이요,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살고 있는 세상을 떠난 우리 사랑하는 친지들입니다.

우리 눈에 산 이와 죽은 이지 하느님 안에는 모두 살아 있습니다.

지상에 살아있든 천상에 살아 있든

모두가 하느님께 뿌리내린 하느님의 꿈나무로 살아있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강론 제목은 ‘하느님의 꿈나무’입니다.


밖에서는 아파트 집짓기에 열심이지만

여기 수도자들은 땅 돌보고 나무 심기에 열심입니다.


아침 나무들 사이 산책 중 떠오른 글입니다.

 

 

 

 

 


-정주의 나무들 속에/살다보니/ 나무를 닮아/나무가 되었다.

 

무념, 무욕, 무심의/무아의 나무가 되었다

 

하느님의 꿈꾸는 나무가 되었다-

 

 

 

 

 



정주의 수도승들을 닮은 언제나 그 자리의 나무들이라

유독 우리 수사님들은 나무를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 뿌리내린 하느님의 꿈나무들입니다.

하느님의 꿈은 당신의 꿈나무들인 성인들을 통해 실현됩니다.

 

 

 

 

 




첫째,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꿈나무들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는 하느님의 꿈나무들입니다.

비단 우리 수도승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꿈나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꿈이자 하느님은 우리의 꿈입니다.

하느님 꿈을, 비전을, 희망을 잃어 인간성 상실이요 자존감 상실입니다.


하느님 꿈이 우리를 하느님의 꿈나무 되어 살게 합니다.

 

1독서 에제키엘서의 훌륭하게 잘 자란 크고 아름다운 향백나무와

복음의 새들이 깃들 정도로 큰 가지들을 뻗은 겨자나무는

바로 잘 자란 하느님의 꿈나무 같은 성인을,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향백나무가 상징하는바

하느님의 꿈나무로 잘 자란 공동체요 성인을 상징합니다.


창립 25주년을 맞는 여기 요셉수도원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과연 향백나무처럼 잘 자란 내 인생이자 공동체인지요.


에제키엘, 바오로, 예수님은

그대로 이런 하느님의 꿈나무로 잘 자란 향백나무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꿈나무입니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하느님의 꿈나무입니다.

하느님 꿈이 없으면 두말할 것 없이 죽은 나무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불쌍한 인생입니다.

 

얼마 전의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수도원 피정 중 그냥 수수한 옷을 입고 걸어오시는 대주교님을 보는 순간

그저 평범한 노인 같다는 생각이 충격처럼 마음에 꽂혔습니다.


하느님의 사람, 대주교님이기에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워 보였지

대주교님이 아니라면 말 그대로 평범한 노인에 불과할 것입니다.


여기 수도자들 역시 ‘하느님의 사람’인 수도자가 아니라면

참 별 볼일 없는 초라하고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상징하는바 참 깊습니다.

 

하느님 빠진 인간의 초라함을, 허무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인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깨달음입니다.


하느님 빠진 인간,

참 무의미하고 불쌍한 아무 것도 아닌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새삼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라는 신원이 특권이 아닌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요,

이런 자각에서 저절로 책임감이 고무되고

겸손과 감사, 섬김의 응답이 뒤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런 깨달음 있어 하느님의 꿈나무로 잘 성장합니다.

 

 

 

 

 





둘째,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세상에서 하느님만큼 부지런하고 겸손하신 분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일하시기에

하느님의 꿈나무로 성장하는 개인이요 공동체입니다.


24시간, 평생 일하는 심장과 폐는

그대로 세상 끝 날까지 일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년 반복되는 세월에 지루해하지 않으시고

늘 새롭게, 조용히,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모두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목표로 하고 닮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비교하여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비교하여 내 겸손과 근면의 수준을 헤아려

주님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이 성덕과 완덕의 지름길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저절로 자라는 씨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일은 요란하지도 시끄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배워 닮은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하느님은 무리하지 않고 순리 따라 때에 맞게 일하십니다.

한없이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며

모두가 자연스럽게 성장, 성숙하도록 하십니다.


하느님 일에, 하느님 생각에 나를 맞춰야지

내 일에, 내 생각에 하느님을 맞추려하니 무수히 파생되는 문제들입니다.


아무도 하느님의 일을, 계획을, 생각을 막거나 좌절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은

당신 최선, 최고, 최상의 방식대로 우리를 여기까지 이끄셨습니다.



멀리 있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꿈나무들인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느님이 겸손히 부지런히 일하고 계신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지 못하면

다른 어디서도, 죽어서도 살 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중에도 부단히 일하시는 주님 덕분에

지금 여기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하느님의 나라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항구한 노력 있어 하느님의 꿈나무로 성장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길은 찾는 자에게 열립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항구한 노력의 응답 있어

하느님의 꿈나무로 무럭무럭 성장합니다.


참으로 사는 만큼 하느님의 진리는 계시되고 계시되는 만큼 압니다.

사는 만큼 압니다.



살지 않으면 아무리 하느님의 진리가 계시 되어도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래서 항구한 수행의 노력입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성무일도와 미사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끊임없는 은총과 수행이 우리의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주님에게서 떠나 몸 안에 살고 있지만

이 몸을 떠나는 날 주님 곁에 사는 것을 믿기에

이 희망이 백절불굴 믿음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의 마음에 들고자 애씁니다.”

 


주님의 마음에 들고자 애쓰는 삶이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줍니다.

공허와 무의미의 어둠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합니다.


주님을 떠나 몸 안에 있는 동안의 이 은총의 선물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술술 새어나가는 시간이요

이 몸을 떠나는 날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습니다.


새삼 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거룩한 성전인 몸입니다.


몸이 있어 주님을 체험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하느님의 선물인 몸인지요.


몸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라 몸을 잘 보살피고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한 일에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닙니다.


마음 따라 가는 몸입니다.

마음이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로 정화되고 성화되고 치유될 때,

몸의 성전 역시 정화되고 성화되고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 몸 안에 사는 동안은

하느님의 꿈나무로 끊임없이 성장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꿈이듯 하느님은 우리의 꿈입니다.




우리의 꿈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꿈나무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당신 희망과 사랑, 믿음의 꿈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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