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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2012년 6월 24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22 조회수403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2012년 6월 24일
루가 1, 57-66.80. 사도 13, 22-26.
 
고대 중동에서는 흐르는 강물에 몸을 씻는 종교 의례가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 깨끗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생물에게 생기를 주어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고대 중동의 종교들은 물의 이런 속성을 이용하여 의례를 만들었습니다.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 죄에서 정화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의례입니다. 이 의례의 관행이 구약성서에 흔적으로 남은 것이 “너희 몸을 씻고 정결케 하라.”는 이사야 예언서(1,16)의 말씀이고, “히쏩의 채로써 내게 뿌리소서, 나는 곧 깨끗해 지리이다.”라는 시편(51,7)의 기도입니다.
 
기원 후 1세기 팔레스티나에는 침례운동이 유행하였습니다. 종말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는 믿음이 만연된 시대였습니다. 바리사이는 그 종말에 대비하여 율법 준수를 더 엄격히 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에쎄네 사람들은 수도생활의 규율을 더 엄히 만들었습니다. 그런 운동에 편성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것이 침례운동입니다. 종말의 심판이 임박하였으니, 흐르는 물에 몸을 담가서 죄를 씻어 구원받자는 운동입니다. 그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다른 세례 운동가들이 수시로 세례를 받아 죄를 씻어야 한다고 가르친 반면, 요한은 회개, 곧 삶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면서 일생에 단한 번 받을 수 있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요한의 세례 운동에 가담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이유는 복음서들이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기록한 문서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알리면, 사람들이 요한을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복음서들이 기록될 당시 요한의 제자들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서들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의 세례 사실을 보도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서들은 예수님과 비교하여 요한을 자리 매김합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요한을 “예수의 길을 닦아 놓을 심부름꾼”,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굽은 길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1,2-3), “예수의 신발끈을 풀 자격조차 없는”(1,7) 인물이라고 소개합니다. 초기 신앙 공동체는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자기들의 해석을 보태어보도합니다.
 
초기 신앙공동체가 그런 해석까지 보태면서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 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구타여 그런 해석까지 해가면서 그 사실을 보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그 시대 다른 침례운동가들의 것과 달랐던 것은 삶의 변화를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군중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고, 세리는 정해진 세금 외에 더 걷지 말아야 합니다. 군인들은 사람을 괴롭히거나 등쳐먹지 말아야 합니다(루가 3,10-14).
 
예수님이 하신 복음 선포는 바로 이 삶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요구한 새로운 실천을 더 발전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말씀하시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마태 7,24)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세리와 창녀들이 유대교의 사제나 백성의 원로들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에서 요구한 실천들을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요한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입니다. 회개를 요구하는 요한의 설교는 대단히 위협적입니다. “독사의 족속! 닥쳐올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었소?”(마태 3,7),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다.”(10). 요한의 이런 표현들은 구약성서의 두려운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십니다. 루가복음서에 잃었던 아들의 비유(15,11-31)가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아,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떠나가 재산을 탕진하고, 탕아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기쁘게 맞이하며, 그를 아들로 복권시키는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마태 18,22) 하느님이십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은 요한을 훨씬 능가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 사랑하시는 분,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체험하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 말하는 것은 그분만이 하느님을 제대로 체험하였다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 예언자의 한 분으로 보입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요한은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다.”(1,6)고 말합니다. 이 묘사는 구약성서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을 상기시킵니다(2열왕 1,8 참조). 요한은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로서 광야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부귀도 영화도 탐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에 몰두하여 산 예언자였습니다.
 
영주였던 헤로데 안티파스가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자, 요한은 그 부도덕함을 비난하였습니다. 마르코복음서(6,17-29)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헤로데의 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헤로데를 기쁘게 하였고, 어머니 헤로디아의 교사(敎唆)를 받은 그 소녀는 요한의 목을 선물로 요구하였습니다.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마태 11,3)라고 질문한 것을 보면, 두 분은 계속하여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도 요한에 대해 특별한 존경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언자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여자 몸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큰 인물은 없습니다.”(11,9.11). 요한도 신앙의 어둠을 안고 예수님에 대해 질문하면서 사셨던 분입니다. 그분은 철없는 한 소녀의 춤의 대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며, 무죄한 이를 희생시키는 이 세상은 무엇이며, 인생은 왜 이렇게 모순 덩어리인가를 요한은 스스로 물으면서 헤로데가 보낸 군인의 칼을 받고 하느님에게로 가셨습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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