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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24일 야곱의 우물-루카1,57-66.8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24 조회수358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57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오늘 주님을 찾아가는 길의 인도자로서 세례자 요한을 만나뵙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위대한 인물은 그의 출생부터가 남다르게 시작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예수님에 앞서 우리한테 오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로 초대합니다.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로서 즈카르야 부부는 물론, ‘이웃과 친척들의 기쁨’으로 이어집니다.(루카 1,57-58) 가부장사회에서 탄생한 아기가 아들인 것도 그러하겠지만 무엇보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기에 고령인 노부부일 뿐 아니라 본디 엘리사벳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석녀였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1,7)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부한테 자녀가 없다는 것은 큰 불행으로 여겨졌고 죄의 결과로 생각하는 한편, 자녀는 하느님 축복의 표징이었습니다.(창세 1,28ㄱ; 시편 127,3; 128,5-6) 그러므로 자녀가 없던 사제 즈카르야와 석녀였던 엘리사벳이 받았을 사회적 불명예가 그들 부부의 인간적 고뇌를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루카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루카 1,6)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한테 자녀가 없다는 사실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죄벌이나 부족함이 아니었음을 전합니다. 따라서 요한의 탄생은 즈카르야 부부가 그간에 겪은 모든 고통을 씻는 큰 기쁨이자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였습니다.

더욱이 아기는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 아니라 나지르인으로서 하느님의 소명을 받고 잉태되었습니다.(1,15; 민수 6,1-4 참조)
유다인들은 주님의 율법에 따라 사내아기가 태어나면 여드레째 되는 날에 할례를 치르고, 아기의 이름을 명명합니다. 아기가 할례를 통해 하느님 백성의 한 일원이 되는 것이라면, 이름은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를 질서 지어줍니다. 요한이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아기의 할례식에 갔던 이웃과 친척들은 벙어리가 된 즈카르야를 위로하고자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합니다.”(루카 1,59. 참조: 레위 12,3)


보통 사람들은 통상적인 관례를 찾아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벗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하느님을 찾아 만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그들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음에도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요한’이란 이름을 선택해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루카 1,12-13.60.62-63 참조) 제1독서가 보여주듯이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이름은 그의 소명과 함께 남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나타내는 한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를 가시화합니다.(창세 17,5-8.15-16; 32,29; 이사 49,1-6; 마태 1,21 참조) 즈카르야 부부가 아기 이름을 예외적으로 지었다는 것만으로도 유다 산악지방의 충분한 화젯거리가 될 터이지만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였다니 이웃은 모두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루카 1,65)

이런 놀라운 소문을 들은 이들은 저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66절) 하고 아기의 장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기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사람의 일을 벗어나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정신이 굳세어진 요한은 자신의 소명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살았습니다.(80절) 광야는 요한이 살아갈 운명을 앞서 보여주지만 또한 그가 사명을 수행하기 이전에 하느님을 찾아 만나야 할 완벽한 수련의 장소로도 떠오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탄생 이전부터 시작해 마지막 순간까지 한 사람의 길을 충실히 섭리하시며 새로운 문을 열어놓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 만납니다.

묵상(Meditatio)

어느 한 사람의 성소와 사명은 공동체를 위한 선물이자 은총이지만 본인한테는 사랑의 시련이기도 합니다. 이는 성소나 사명이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의 탄생은 이웃의 기쁨이지만 성인의 선택과 사명은 광야로 인도되는 것일까요?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대면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굽고 거친 마음을 곧게 펴 주님이 오시는 길을 마련하며, 회개로 돌아서게 하기까지, 부모와 친지 그리고 이웃의 기쁨이었던 “그는… 광야에서 살았습니다.”(80절) 요한은 광야에 살며 부족함의 전형인 광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가 찾는 하느님께서 충만함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텅 빈 자리의 한 모퉁이에 서 계셔서 일까요?

기도(Oratio)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루카 1,76-77)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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