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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행하는 믿음 [단순한 마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28 조회수470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마태오 7,21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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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에서 신자들이라면 입으로만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만 하늘 나라에 가지 못한다 하고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단지 머리와 입으로만 주님 주님한다고 해서 이를 믿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하고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행동으로만 해서 또한 하늘 나라에 간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다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고 말씀을 명확하게 일러 주십니다. 행동으로 실행은 하겠지만 무엇을 실행하느냐 하는 것이 먼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라는 가르침을 주시고 계신다 하겠습니다.

그런즉 이 말씀의 가르침에서 서로 상반되는 모순이라고는 없습니다. '믿음으로만 아니다'고 하는 생각이나 '실천(행동)으로 이다'라고 생각하는 모두 둘다 맞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과 실천을 분리해서 판단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라고 하면 실천이 이미 믿음 안에 포함되어지는 측면이 내재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실천이 분리된 이유는 인간의 세속적 욕심에 의해서 그렇게 갈라졌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마음이 분리시켰다고 할 것입니다.

단순한 마음이란,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를 분리시키고 다시 둘을 하나의 교차점으로 합일를 시도하고자 함으로써 인간은 도리어 복잡해 지고 난해한 의문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다시 말한다면 믿음과 실천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단순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실천있는 믿음이 애초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에 실천을 분리시켜 내는 것은 아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실천의 문제가 발생합니다.즉, 행동으로 실천은 하겠지만 무엇을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 먼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무엇을 실천하여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이시며 예수님의 행동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믿음의 순종>을 말합니다. 말씀을 믿고, 그 다음에 믿는 바에 행동이 따르는 순종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는' 세상의 온갖 말들에는 세상의 뜻이 들어있다고 할 것입니다. 세상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믿음의 순종' 입니다. 이것이 아니다 한다면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는 이 말씀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연유에서 비롯됩니다. 

'불법'이란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법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게 불법(무법, 불의)인 것입니다. 세상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불법'인 것입니다. 세상의 정의를 말하고 성모마리아에 대하여 말하여도 불법을 일삼는 자들이 있다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하느님의 가르침 대로(말씀하신 대로) 맺은 열매(루카1,38)가 아닌 '진리를 벗어난 사랑의 행동'은 불법이다 보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과 행적의 이해는 인간의 세밀한 추론에 있지 않고 '진리(말씀)'에 대한 겸손한 믿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통해서만 그 이해가 가능해 진다는 의미이다. 아버지께서 사랑의 자비를 베푸신다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당신께 가까이 오는 영혼들에게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에게 약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사랑' (선하신 뜻)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 순수한 '작은 자' 이다. 하느님을 사랑할 능력은 미약하지만 성령께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열망하게 하심으로써 우리 영혼을 일깨워 주시는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읽고 듣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자기가 구축시킨 세상의 온갖 생각(개념의 시스템)들이 자기 내면의 마음에 가득 채워져서 '하느님의 말씀'을 있는 말씀 그대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단순하고도 순수하게 깨끗이 정화된 어린이 마음으로만 '아버지의 말씀'을 올바로 보게 되어지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단순하게 바라보면 명확하다. 단지 사람 자신이 단순한 길을 걸어가지 못할 때에 성경 말씀은 복잡해 지고 난해한 문제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분석하고자 하여 분석되어져 그같은 연구 지식이 믿음으로 더 커지는게 아니라 풍랑을 만나서 오히려 ''의혹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다른 종교에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게 되고 혼합(혼동)의 무질서 안에서 그 자신은 그렇게 존재해 갈 뿐이다. ] 

<참고> 각종 진리에 반대되는 이설(교설, 강의)들에 물들어 하느님께 대한 믿음 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 이 구원을 가져오며 앎(정신)이 믿음보다도 높은 차원의 단계라는 것이 영지(그노시스)주의 측면이다. 이런 상태에 있게 되면 자기 인식의 자만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예수님께 향한 겸손함 보다도 그 자만심 속에 형성된 여러 거짓말들에 머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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