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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1일 야곱의 우물- 마르5,21-4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01 조회수373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21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댔다.

25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와 제 이웃이 고통 받을 때 모든 것을 주님 손에 내려놓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오늘 복음에는 하혈하는 부인의 치유 이야기(마르 5,25-34)가 야이로의 딸을 되살린 이야기(5,21-24.35-43) 사이에 소개됩니다. 두 이야기는 ‘살리다’(23절.28절), ‘믿다’(34절.36절), ‘손을 대다’(23절.27-28절.31절.41절)라는 말로 서로 연결되면서 단일한 주제인 ‘믿음’을 설명합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이 병을 치유받기 위해 사람들 틈에 끼어 예수님 뒤를 따라갑니다. 당시 정결법은 몸에서 피가 흐르는 사람과 접촉하거나 접촉당하면 그 사람도 부정을 타게 된다고 여겼습니다.(레위 15,25–33 참조) 그런 병을 지닌 사람은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고독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육체의 질병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 많은 사람이 자포자기하고 혼자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여인은 아주 강인한 생명력과 신선한 독립심을 지닌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부정한 사람이니 사람들한테 다가가지 말라는 사회 법칙을 그대로 따르지도 않습니다.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28절)라고 하는 여인의 말은 ‘병에서 치유되어 살겠지.’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구원하다 σῴζω ’라는 동사는 자주 ‘질병이나 더러운 영에 들린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건강한 삶으로 다시 복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본문 앞(3,10)과 뒤에서(6,56)도 병자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치유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손을 대는 것,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대려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인간적 접촉에는 외적인 접촉과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그를 변화시키는 내적인 접촉이 있듯 예수님의 치유도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여인의 ‘만짐’을 통해서 외적인 몸의 질병을 치유하시고(5,29) 이어 당신 편에서 영적인 치유를 행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34절)


이제 예수님은 다시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야이로는 “어린 딸”(23절)이라고 말하지만 당시 풍습으로 ‘열두 살’은 혼인 적령기에 해당하는 나이입니다. 이렇게 다 키운 딸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 야이로는 숨이 멎을 듯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혈하던 여인한테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라고 하지만 야이로한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36절) 출구가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혈하는 여인의 행위는 ‘두려움 없는 믿음’이 가능하다는 생생한 본보기입니다. 여기서 왜 하혈하는 여인 이야기가 야이로의 딸 이야기 사이에 삽입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가난함’과 신뢰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맡기는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으로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이 두 가지는 구약성경 안의 ‘가난한 사람’(아나뷤), 하느님 백성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야이로는 그녀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난하고 단순하게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곧 그분이 야이로의 딸한테 “탈리타 쿰!”(41절) 하고 외쳐 죽음에서 깨어나게 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묵상(Meditatio)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주십시오.”(5,23) 주님, 제가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이를 찾아가 그를 만져 치유해 주십시오.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그 사람의 귀에 대고 ‘탈리타 쿰!’ 하고 힘차게 외치십시오. 그가 깨어나 다시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자신한테 선물로 부여된 삶의 온갖 가능성을 활짝 꽃피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아버지이자 우리 아버지인 하느님은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지혜 11,26)이십니다.


기도(Oratio)

주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께 애원하자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시편 30,3)

 

임숙희(영성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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