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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되고자…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04 조회수344 추천수4 반대(0) 신고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되고자…
                                    다시 매주 월요일에는 서울을 갑니다





지난 2일 오후 또 한 번 서울을 다녀왔다. 이번엔 여의도가 아닌 시청 옆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동안 몸과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다가 밤에 돌아왔다. 충남 태안에서 2시 50분발 남부터미널 행 일반버스를 타고 서울을 갔다가, 돌아올 때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8시 10분 발 태안 행 마지막 우등버스를 탔다.

내가 굳이 일반버스와 우등버스를 표기하는 이유는, 국가유공자(상이등급 6급)이기에 요금 30% 할인을 받는 일반버스를 주로 이용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할인이 되지 않는 우등버스를 탈 때는 이상하게 마음이 곤혹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우등버스는 요금이 비싼데다가 할인을 해주지 않으니 이중으로 손해를 보는 셈이지만, 그 금액보다도 국가유공자 따위는 우등버스를 탈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도 여겨져 이상한 모욕감 같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2일 다시 서울에 간 것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6시 30분 시국미사 성격의 ‘월요미사’를 거행하기로 함에 따라 첫 번째 미사부터 참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빠짐없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몸을 놓게 될 것이다.              



▲ 대한문 앞 ‘월요미사’ 장면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7월 2일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월요미사’를 시작했다.  
ⓒ 전재우 - 대한문

지난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꼬박 1년 동안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을 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거리미사’에 매번 참례하면서 미사 전의 묵주기도 주송을 도맡기도 했다. 전국 각 교구와 여러 수도회의 많은 신부님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건물 없는 세계 최대 교회’의 신도회장이 된 형국이었다.

그 미사를 일단 접게 되어 매주 월요일 서울 가는 일이 중단된 후로 나는 이상한 공황 현상을 겪어야 했다. 한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정서교란을 감내해야 했다. 그동안 제주도 강정엘 한 번 갔다 왔지만, 암 투병을 하신 89세 모친을 모시고 사는 처지에서 다시 제주도를 가기는 어려워 이상하게 죄의식을 안고 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차에 7월 2일부터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매주 ‘월요미사’가 봉헌된다는 연락을 접하게 됐다. 뛸 듯이 기뻤다. 먼저 전화가 오고 메일이 왔다. 메일 내용은 내 마음을 지레 뜨겁게 만들었다.

【제주 강정은 여전히 눈에 밟히고, 아직 가보지 못한 콜트콜텍과 밀양, 영덕 등 여러 곳이 우리의 순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모든 호소를 담아 이제 대한문으로 갑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죽음을 분향하는 그곳에서 용산 남일당부터 제주 강정에 이르는 죽어가는 모든 것들의 절규를 귀담아 들으며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7월 2일부터 시작되는 월요미사는 대한문 앞에서 봉헌되며 시간은 오후 6시 30분입니다. 목 타는 대지에 물을 적시려고 기약도 없는 바위에 구멍을 뚫는 심정으로 달려오실 줄 믿습니다.】
  
나는 노친께 착실히 설명을 드리고 이해를 구했다. 제주 강정은 당일치기가 불가능한데다가 하루 갔다가 다음날 돌아오는 것도 미안한 일이어서 가지 못하는 대신 서울은 당일치기가 가능하니 대한문 앞 미사에는 매주 참례할 뜻을 표했다.

그리고 2일 오후 집을 나서기 전에 노친께 매일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홍경천차, 홍삼 엑기스, 바이오 기공수, 마늘 환 등을 식탁에다 내놓고 시간 맞춰 드시도록 이르고는 학교에 있는 아내에게도 전화하여 소소한 부탁들을 했다. 노친도 아내도 이미 익숙해져 있는 일이어서 별 문제는 없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을 갔고, 또다시 미사 전의 묵주기도 주송을 했다. 사회를 보시는 사제단의 김인국 총무 신부님은 미사 시작 전에 비장한 말을 했다.



▲ 대한문 앞 ‘월요미사’ 장면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대한문 월요미사’는 매주 월요일 저녁 6시 30분에 거행된다.  
ⓒ 전재우 - 대한문

“우리가 오늘 앉아 있는 이 자리는 사연이 많은 자리입니다. 1919년 고종임금이 승하했을 때 조선팔도의 수많은 백성들이 달려와서 오열한 자리입니다. 그때로부터 90년이 흘러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많은 시민들이 와서 통곡을 했던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둘 때입니다. 그동안의 눈물, 절규, 탄식을 금년도 12월에 생명과 평화, 그리고 인권으로 거두는 그런 ‘월요미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국 각 교구와 여러 수도회에서 오신 29명의 사제가 함께 한 가운데 서울교구 우이성당 주임인 전종훈 대표신부님이 주례를 했고, 서울교구 빈민사목 담당 겸 장위1동 선교본당 주임인 이강서 신부님이 강론을 했다. 심금을 울린 이강서 신부님의 강론 중에서 내 기억에 남는 몇 구절을 소개해 본다.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라는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2,6-10. 13-16)을 비추어 예언자의 시대와 다름없이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잔인하기 짝이 없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아모스 예언자의 말씀이 ‘무자비하고 탐욕스런 정권에 대한 신랄한 경고이자, 여전히 방관자로서 남아 있으려는 소시민에 대한 일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약하고 작은 이를 자기 자신으로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웃의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이며 주님의 아픔일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느님을 잊은 자들아, 깨달아라!’라고 하는 화답송으로 영혼을 일깨워야 합니다. 재물의 신 맘몬, 풍요의 신 바알에 숭배하느라 정의의 하느님·평화의 하느님·사랑의 하느님을 잊고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늘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타인이 죽어야 내가 사는 세상에는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불의와 결탁한 이에게는 심판이, 약자를 짓밟은 이들은 결국 죽음이 그들의 마지막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 알고 있습니다. 약하고 보잘 것 없으며 가난한 우리가 바로 하늘이며 희망이고 평화라는 사실을 가슴에 안고, 어깨동무하여 생명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 대한문 앞 ‘월요미사’ 장면 / 7월 2일 거행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첫 번째 ‘대한문 월요미사’는 전종훈 대표신부(서울교구)가 주례를 했고, 이강서 신부(서울교구)가 강론을 했다.  
ⓒ 전재우 - 대한문

주례사제인 전종훈 대표신부님은 미사를 마무리하면서 “20대 시절에는 유신독재와 싸웠고, 30대 시절에는 5공 독재와 싸웠으며, 40대 시절에는 문민독재를 겪었는데, 50대 시절에는 자본독재, 맘몸과 바알을 상대로 투쟁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는 말을 했다.

영성체 후 공지사항을 발표하면서 김인국 신부님은 “여러 수도회에서 많은 수녀님들이 오셨고 100명이 넘는 형제자매님들이 오셨는데, 한 분만 소개를 하겠습니다”하고는 “충남 태안에서 오신”이라는 말과 함께 나를 소개해주셨다. 나는 얼떨결에 마이크 앞에 나가 짧게 인사말을 했다.

“꼬박 일 년 동안을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에 와서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반년 넘게 쉬는 동안 공황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정서교란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형제자매님들을 뵙고 함께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빌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오늘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계속 매주 월요일 저녁 이 자리에 와서 기도하겠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나는 여러 신부님, 형제자매들과 정담을 나누고 싶었지만 버스 시간 때문에 일찍 자리를 떠야 했다.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내려갔고,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가까스로 8시 10분 발 태안 행 마지막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1년 전처럼 서산까지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서산문화회관 광장에다 차를 놓고 15분가량 걸어 버스터미널로 가서 일반버스를 타기로 했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서산으로 오는 버스는 밤 9시 이후에도 세 대나 있으니 미사 후 종종걸음을 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어쨌거나 다시금 돈 쓰고 시간 쓰고 고생하는 일을 시작한 셈이다. 그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끝나는 날까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동참할 생각이다. 그것은 오늘 지금의 중요한 내 삶의 한 가지 이유이므로….

덕수궁 대한문 앞의 첫 ‘월요미사’에 참례하고 와서 시 한 편을 지었다. ‘불씨’라는 제목의 시다. 계속 미사에 참례하다 보면 ‘영성체 후 묵상’ 시간에 낭송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아직 낭송하지 않은(아직 발표하지 않은) 내 신작시 ‘불씨’를 소개해 본다.



▲ 대한문 앞 ‘월요미사’ 장면 / 7월 2일의 첫 번째 미사를 시작하기 전 김인국 총무신부(청주교구)는 덕수궁 대한문 앞이 지니는 공간적 의미를 비장한 어조로 설명했다. 맨 왼쪽 끝에 앉은 내 모습도 보인다.  
ⓒ 지요하 - 대한문 

              
불씨


내 가슴엔 불씨가 있다
조물주께서 태초부터 내게 베푸신 불씨다
세상을 알게 하는 불씨다
나를 살게 하는 불씨다

평생을 살아오며 내 나름으로
뜨겁게 불씨를 피워왔고
애지중지 불씨를 간직해왔고
이리저리 나누고 전하기 위해
눈물도 땀도 많이 흘렸으며
불면의 밤바다를 헤어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오늘 내가 있다
오늘은 대한문 앞에 내가 있고
내 앞에 대한문이 있다
나는 대한문의 불씨이고
대한문은 내 생명의 불씨이다

대한문아, 너는 오늘
사랑과 평화의 불씨이며
희망의 불씨이다
정의와 인권의 불씨이며
참 민주주의의 불씨이다

불씨는 불꽃을 추구하고
불꽃으로 승화한다
불꽃은 끝내 소멸하지 않고
모두 함께 살게 하는 열매를 맺는다

변화는 생명이고, 생명은 변화다
그것을 위해 대한문아, 너는 오늘도
불씨를 안고,
우리 모두와 생명의 불씨를 나누고 공유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안고서도
오늘도 피어린 역사를 만들며 나아간다

대한문아, 비록 이 땅을 침탈한 저 왜구들 같은
일진광풍이 거듭 닥칠지라도
우리들 가슴의 불씨는 영원하리니
오늘도 내일도 불씨를 안고 사는 힘으로 나아가자!

‘쌍용’이라는 이름의 벼랑에서 산화하여
불씨가 된 스물 두 명의 생령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
결코 꺼지지 않을 불씨를 안은 가슴으로
불꽃이 가져올 생명의 열매를 향해
오늘도 또 내일도 뜨겁게 나아가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죽음을 분향하는 대한문 앞에서 2012년 7월 2일부터 시작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월요미사’에 참여하며, 용산 남일당부터 제주 강정에 이르는 죽어가는 모든 것들의 절규를 귀담아 들으며 이 시를 바친다.


12.07.04 14:22 ㅣ최종 업데이트 12.07.04 14:22  지요하 (sim-o)  
대한문 월요미사, 불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출처 : 하나의 작은 '불씨'가 되고자...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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