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세상의 빛 - 7.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05 조회수506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2.7.5 목요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1821-1846) 대축일

 

역대24,18-22 로마5,1-5 마태10,17-22

 

 

 

 

 




세상의 빛

 

 

 

 

 


양상과 정도는 달라도 계속되는 어둠입니다.

과연 인류의 진보가, 역사의 진보가 가능한지 묻게 됩니다.

 


문명의 야만시대를 접하면서

때로 퇴행하는 인류가, 역사가 아닌지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아마 한민족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대는

18-19세기 조선 말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려 1만 여명 이상의 가톨릭 순교자를 배출했던

참 엄혹하고 절망의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바로 이 시대에

25년간 짧은 삶을 치열하게 하느님의 빛으로 살다가 순교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삶과 신앙을 대하면

늘 감동이요 가슴 먹먹한 충격입니다.


오늘 역시 계속되는 어둠의 현실입니다.


어제 읽은 인터뷰 기사(연극인 오세혁)를 인용합니다.

 


“다들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뭔가에 꽂혀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단계랄까요.

  게임에 꽂혀 있건 <나꼼수>에 꽂혀 있건,

  안철수에 꽂혀 있건,

  이명박 욕하기에 꽂혀 있건.

  요즘엔 밤에 시내를 못나가겠더라고요.

  술들을 먹는데 기분 좋게 취한 사람들은 거의 없고

  너무나 악에 받친 모습이랄까.

  건드리면 처참하게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6학년짜리 조카가 너무 게임을 많이 해서

  게임이 재미있는 거지만 너무 많이 하진 말라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나는 어른이 되어도 잘 살 가능성이 없다. 이미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데 온라인 게임이 세계에는 아직 평등이 있다.

  열심히 하면 이 세계 안에서는 레벨을 올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쿠바에 농업 견학 갔던 농민들이

  땡볕에 일하는 쿠바 청년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지금처럼 농부로 살아가는 거’ 라고해서 울었다고 해요.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쿠바보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노동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바로 이게 우리의 어둔 현실입니다.


이런 어둔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빛,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하는 순교적 삶입니다.


밖에서 볼 때는 유토피아 이상적 수도원 같아도

안에서 살아보면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의 현실입니다.


수도원 피정하시는 분들은 환상에 빠지지 말고

배 밭 소임지에서 치열하게 노동하는 수사님들의 현실을 봐야 합니다.


하느님께 사랑을, 희망을, 믿음을 두고 살기에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사님들입니다.


바로 이게 순교적 삶입니다.

순교적 삶은 세상의 빛으로서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 궁극의 사랑을 둘 때 사랑의 빛으로서 삶입니다.


하느님을 떠날 때 우상의 어둠 속에 삶입니다.


바로 1독서의 요아스와 유다의 대신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기는 순간

하느님의 빛에서 세상의 어둠으로 전락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는 빛이지만 우상을 사랑할 때는 캄캄한 어둠입니다.


마침내 어둠에 눈이 멀어 무죄한 즈카르야 예언자를 돌로 쳐 죽게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사랑의 빛, 세상의 빛이 되어 순교적 삶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에

항구하고 치열한 하느님 사랑이, 이웃 사랑이 가능합니다.

 

 

 

 

 



희망의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에서 샘솟는 희망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시편131,3).

하여 절망의 어둔 시대, 희망의 빛, 하느님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강력히 설파하는 희망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샘솟는 이 희망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빛, 세상의 빛 되어 살게 합니다.


바로 이 희망의 빛 안에서

순교적 삶에 항구했던 성인들이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믿음의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순교적 삶은 항구한 믿음의 삶입니다.

아버지의 영이 우리 안에 있어 항구한 믿음입니다.

하느님 향한 사랑과 희망에서 샘솟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랑과 희망이 빛이듯 믿음 역시 빛입니다.

이 믿음의 빛이 걱정과 불안,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끝까지 견뎌내는 게 믿음이요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끝까지’라는 말마디를 대하는 순간

얼마 전 홈페이지 강론에 ‘끝까지 달려’라는 분의 댓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달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시는 분!

 

용맹 정진 수도하시는 분!

 

저희들의 힘겨운 삶에

 

강한 힘을 주시는 분!

 

제 영혼의 양식을 주시는 분!

 

늘 감사합니다.-(6.26)

 

 

 

 

 


아마 ‘끝까지 달려’ 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 역시

치열한 믿음의 삶에 항구한 분임이 분명합니다.


저 또한 이 댓글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됐습니다.

 

 

 


하느님의 빛, 세상의 빛으로 살 때 항구한 순교적 삶입니다.

 

사랑의 빛, 희망의 빛, 믿음의 빛 되어, 하느님의 빛 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히며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생명과 빛으로 오시어

죽음의 어둔 세상에서 생명의 빛으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