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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 7.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06 조회수475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12.7.6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아모8,4-6. 9-12 마태9,9-13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아무도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시는 주님-

 

 

 

 

 



인공미가 자연미를 압도하는 시대입니다.

생명과 향기는 조화의 인공미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화의 자연미에 있습니다.

주님을 알고 닮아갈수록

저절로 회복되는 생화의 자연미에 생명과 향기 가득한 삶입니다.


오늘은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
cumjesus@hnamail.net

  아, 그거 ‘예수와 함께’라는 뜻이예요.

  로마에서 12년 동안 공부했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더듬거리며 지인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는 순간

로마에서 성악을 전공한 어느 자매님의 즉각적인 대답입니다.


참 좋은 이메일 주소라는 찬탄과 함께

‘예수와 함께(cumjesus)’라는 말마디가

신선한 충격으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I am with you).’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시며,


나는 너희 안에 있다(I am in you).’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신 분이심임을 깨닫습니다.

 


역으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감을 깨닫습니다.



또 어제 본원에서 새삼 주님의 품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했습니다.

분원의 좁은 품에서 힘들게 살던 많은 수도형제들이

본원의 넓은 품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밝은 모습으로 사는 모습에서

주님의 넓은 품을 묵상했고 본원에 대한 고마움을 가득 느꼈습니다.

 


고소도로 휴게소에서 온갖 쇼핑물을 판매하는 가게의 명칭

‘올포유(all for you)’란 명칭이 저에겐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너희를 위한 모든 것이 갖춰진 가게란 뜻인데


저는 순간 주님은 우리의 올포유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너희의 모두다(I am all for you)’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우리의 모두인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사는 우리들이 진정 부자임을 깨닫습니다.

 


또 한 가지 깨달음이 생각납니다.

깨끗한 장소에서는 휴지를 함부로 버리지 않다가

지저분한 곳에서는 함부로 휴지를 버리듯이,

두렵고 엄격한 사람 앞에서는 조심하다가도 착하고 만만한 이에게는

차별하고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는 인간의 양면성입니다.

 

강 한자 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 에게는 강한

비굴한 양면성을 지닌 인간입니다.


차별과 무시가 죄이고 차별당하거나 무시당할 때 만큼 큰 상처도 없습니다.


23년 전 강론 때 인용했던

도스트에프스키 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 나오는 감동적인 내용을

다시 인용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人間이든,

  아무리 짓밟힌 人間이라도 무의적이건 본능적이건

  人間으로서의 자기의 가치에 대한 존경을 요구합니다.

 

  罪囚는 자기가 罪囚라는 것과

  사회의 버림을 받은 자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낙인 어떤 족쇄를 갖고도

  그에게 人間임을 잊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실제로 그를 人間으로서 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 !. 그렇습니다.

 

  人間 대접은 오래 전부터 신의 모습을 잃고 있던 사람까지도

  人間답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 불행한 사람들이야말로 더욱 더 人間답게 대해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구원이요 기쁨입니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라

아무도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 예의를 다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요 주님다운 사랑입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

오늘 아모스 예언자와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빈곤한 이들을, 가난한 이들을, 힘없는 이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며 짓밟는 자들에 대해 불같이 진노하십니다.

 


“그 날에 나는 한낮에 해가 지게하고,

  대낮에 땅에 캄캄하게 하리라.

  너희의 축제를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를 애가로 바꾸리라.”

 


하느님을 몰라 하느님의 말씀을 잊어 차별과 무시입니다.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몰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것입니다.

 


주님으로 채워질 때 저절로 사라지는 차별과 무시입니다.

복음의 주님 역시 차별과 무시가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세관원 마태오를 불러 함께 하시며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당신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합니다.


당신과 함께 하심으로

이들을 당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주님이십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주님께 무지한 자들의 물음입니다.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무시하지 않는 주님을 몰라서입니다.


얼마 전 대주교님이 수도원 피정 중

수사님들 모두가 대주교님과 둘이서 함께 사진을 찍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대주교님과 함께 함으로 업그레이드 된 신분임을 상징하듯

주님과 함께 할 때 존엄한 품위의 회복입니다.


다음 주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매일 주님은 거룩한 미사를 통해

병자이자 죄인인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고자 말씀과 성체로 오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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