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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옷자락 [은총의 도구]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09 조회수494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마태오 9,18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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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예수님께서는 이 행적에 앞서서 중간에서 혈루증 여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시기 전에 행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회당장의 딸을 살리러 오시는 바쁘신 길 도중에도 혈루증 여인에게 잠시 머무르시며 질병만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믿음의 여인'을 구원해 주십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회당장의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한 이는 혈루증 여자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청하는 회당장과 예수님께 직접 청하지도 않은 여자의 두 가지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청하는 믿음'과 예수님께 '청하지 않은 믿음'의 행태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세대에서도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부르며 예수님께 청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응시하며 자기 행동으로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교회 성전을 열심히 다니면서 예수님께 은총을 청하는 사람과 비록 교회 성전을 열심히 다니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응시하며 자신의 신앙 행위로 예수님께 은총을 구하는 사람들이 '믿음의 차원' 안에서는 얼마든지 실재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굳이 오늘날에서의 관상과 활동이라는 두 가지의 측면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 향한 믿음의 행위는 그분의 옷자락에서라도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놀라운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들과 '하느님에게서오는 것이 아닌 것'들은 분명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 곧, 옷자락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은 회당장과는 달리 세상에서 힘(세력)없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만질 수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의 도구'이다 할 수 있습니다. 도구 자체가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일 도구 자체를 숭배한다면 정말로 큰 잘못된 생각이 됩니다.그것은 영적인 '불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은총의 도구'는 모두 우상에 지나지 않습니다.온 만물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존엄성을 크게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하느님의 존엄성을 자기 안에 가지고 온 만물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어느 분께 간다>는 말은 진리를 속이는 거짓말(거짓된 메세지)과 거짓된 교설(강의)들에 불과합니다.

다시 반복한다면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은총의 도구'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온 만물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마리아의 은총'이라는 곧, 은총의 세계에서 어머니라고 부르는 은총의 도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으며 책이 있고, 영화도 있으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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