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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겨자씨의 비밀 1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15 조회수513 추천수5 반대(0) 신고

겨자씨의 비밀 1

 

 
 

불교의 경전인 ‘유마경’에는 수수께끼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겨자(芥)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있다.” 수미산(須彌山)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나오는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산으로 해와 달은 수미산의 허리를 돈다고 알려진 상상 속의 성산입니다.

 

겨자씨는 티끌이나 먼지와 같은 극히 작은 물질을 상징하는 씨앗인데 그 속에 해와 달이 산허리를 돌만큼의 거대한 수미산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모순입니다.

 

이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던 당나라의 학자 이발(李勃)은 지상(智常)스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 유마경에 이르기를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있다.’ 하였는데 어찌 그런 큰 산이 작디작은 겨자씨 속에 들 수 있습니까.”

 

이발은 평소 독서를 즐겨 독파한 책이 만권이 넘어서자 사람들이 ‘이만 권’이라 칭하였던 당대의 대학자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지상스님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발아, 사람들은 너를 ‘이만 권’이라고 부르지 않더냐. 그러하면 너는 만권의 책 내용을 어떻게 겨자씨와 다름없는 작은 머릿속에 넣을 수가 있었느냐.”

 

지상스님의 선답은 알듯 말듯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더욱 알쏭달쏭합니다. 주님도 같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수수께끼와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태 17,20)

 

겨자씨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듯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마태 13,32) 이지만 이 작은 믿음만 있다면 주님은 우리가 산을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루카 17,6) 라고 못 박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가톨릭에 귀의한 것이 올해로 25년. 그동안 이 구절은 당대의 학자 이발처럼 항상 저에게도 풀리지 않는의문이었습니다.

 

우선 주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면 저는 기가 죽습니다. 저는 믿음이 부족한 열등한 신자임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부님이 열성적인 신자와 내기를 했습니다. 만약 그 신자가 ‘주의 기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잡념 없이 그 뜻을 새기며 외울 수만 있다면 만 원을 주겠다고 말입니다. 신자는 자신 있다고 대답하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다가 갑자기 눈을 뜨고 물었습니다.

 

“신부님, 성공하면 얼마라고 하셨죠. 만 원이었던가요. 오천 원이었던가요.”

 

이 우스개 속의 주인공이 바로 저입니다. ‘주의 기도’의 짧은 기도문도 저는 1%의 잡념 없이 끝까지 완벽하게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주님을 향한 제 믿음이 겨자씨 하나만큼 작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말씀인가요. 물론 저는 이 산을 저쪽으로 옮기거나 바다 속에 뽕나무를 심을 만큼의 큰 소망을 바라지는 않지만, 주님을 향한 믿음이 겨자씨 한 개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미사에 참여하고, 묵주기도를 하고, 식사할 때마다 성호를 긋고, 가끔 주님이 주시는 위로에 눈물 흘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용솟음쳐도 주님을 향한 제 짝사랑이 겨자씨보다도 작다면 제가 주님을 배신한 가롯 유다와 무에 다를 게있겠습니까.

 

가톨릭에 귀의하고 25년 동안 줄곧 마음속에 품어왔던 겨자씨의 비밀이 제 마음속에서 밝혀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겨자씨의 비밀이야말로 ‘싹이 트고 자라나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 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마태 13,32)로 자라는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계속)

 

- 성경 인용은 공동번역 성서입니다. -

 

◎ 2012.7.15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중에서 / 최인호 베드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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