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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령은 칼이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15 조회수888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 성령은 칼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 로버트가 거칠고 무례한 소년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정원에서 빨간 사과 여섯 개를 따다가 쟁반위에 얹어놓고 로버트 앞에 내밀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사과는 아직 익은 게 아니니까 다 익을 때까지 며칠 그대로 간직해두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사과를 보관해두면서 완전히 썩어버린 하나를 그 여섯 개의 사과들과 함께 두었습니다.

이것을 본 아들은 썩은 사과가 다른 사과를 모두 썩게 할 텐데요?” 하면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싱싱한 사과가 썩은 사과를 싱싱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니?”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뒤 사과를 꺼내왔는데 과연 모두 썩어버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시켰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얘야,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 너도 결국 나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여러 번 말하지 않았더냐? 이 좋은 사과 6개가 한 개의 썩은 사과를 싱싱하게 만들지 못할뿐더러 싱싱한 6개 모두 썩어버린 것을 보면 나쁜 친구와 사귈 때 네가 장차 어떻게 될지 이제는 깨닫겠느냐!”

나쁜 아이들 틈에서 혼자 거룩하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 아이들을 떠나던가 아니면 그 아이들처럼 되어버리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분별없이 일치하기 위해 다가가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칼과 같이 나누고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지내는 미사는 구약의 출애굽 때의 파스카 예식을 그리스도께서 성 목요일에 당신 제사로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누룩이 들지 않은 밀떡을 사용해 성체성사를 거행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는 하느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빵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누룩을 넣어 준비했다면, 그 빵은 며칠 안가서 곰팡이가 슬고 상해버렸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룩은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하느님 백성을 부패시키는 오염물질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라고 하신 이면에는 그들과의 접촉으로 누룩 없이 깨끗한 빵인 당신의 제자들이 오염될까 염려스러워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어떤 이들과는 결별을 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때도 대인관계가 협소하지는 않았는데, 어떤 동료 신학생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은 혼자만 하느님께 갈 거야? 쓰러져 가는 사람들과 함께 쓰러지고 함께 가야 하지 않겠어?”

아마도 제가 혼자 도도하게 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름대로 힘겨워하는 친구들과 함께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만 함께 쓰러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쓰러지는 것은 저에게나 그 사람들에게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함께 섞여서 하나가 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도 평상시엔 사막에서 살다가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는 커다란 도시로 복음전파를 나갔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며칠 못 있고 다시 사막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물고기가 있어야 할 곳은 물이다.”

그렇습니다. 물고기가 되어버렸다면 더 이상 물 밖에서는 오래 살 수 없습니다. 물 밖에서 오래 살면서 죽어가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칼은 자르고 분열시키는 도구입니다. 칼은 사랑이신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은 사랑이시고 일치시키는 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누느냐고요? 일치가 곧 분열입니다. 내가 하느님과 성령으로 일치했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나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해서 혼인하게 되었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나뉘게 됩니다. 이 부부가 아기를 낳게 되면 그 자녀와 다른 아이들과는 분리되게 됩니다. 자신의 아기와 남의 아기를, 혹은 자신의 남편과 모든 남자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없고 또 그것이 좋은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라고 하는 말뜻에는 이미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우리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와는 분리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하나라는 말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먼저 누구와 일치하고 있는지 질서와 순서가 있어야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느님의 삼위일체 사랑에 끼어들 수는 없습니다. 그 분들은 당신 완전한 사랑으로 철저히 우리와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무분별한 혼합의 일치가 아니라, 정확한 질서와 구분 안에서만이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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