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얻어맞은 얘기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16 조회수591 추천수7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4 산은 '산'이 아니다

얻어맞은 얘기
지금도 그런 기질이 다분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상당한 개구 쟁이였다. 고집도 세고 장난도 심한 요란한 아이였는데 그러나 집 에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호랑이 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뭔 일을 "하라!" 하시면 해야 했고 또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말아 야 했다. 그래서 집안의 잔일은 주로 내게 맡겨졌었다. 어느 땐 나만 집중적으로 부려먹는(?) 어머니가 정말 싫었다. 왜 형이나 동생은 안 시키고 나만 시키느냐고 물으면, 어린것이 시키 면 시키는 대로 안하고 싸가지 없이 말대답한다고 오히려 나만 혼 내곤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저 분이 정말 나를 낳 아 주셨는지 의심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놀다가 늦게 집 에 갔더니 화가 나신 어머니께서, 이놈의 자식이 때도 모르고 돌아 다닌다면서 장작개비로 사정없이 후려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볼까 봐 너무 창피해서 얼른 대문부터 잠그고는 때릴 수 있는 데까지 때리시라고 가만히 서 있었더니 한 스무 대쯤 해서 어머니는 그만 지치셨다. 그때 나는 맞으면서 구차하게(?) 잘못했다느니 또는 다시는 그 렇게 하지 않겠다느니 하는 용서는 빌지 않았다. 나는 사실 맞는 것은 아프지 않았기에 다리에 피멍이 들어도 꼼짝하지 않고 서 있 었다. 그런데 얼마 후였다. 어머니께서 당신이 방금 때리신 내 다 리를 붙들고는 아프지 않으냐고 울상을 지으시는 것이었다. 그리 고 그 후로 어머니는 나에게 매를 드신 적이 없었다. 얻어맞은 얘기를 하자면 군대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때 논 산 훈련소를 졸업하고 의정부에 있는 101보충대를 거쳐 부대 배치 를 받은 곳이 포천 낭유리에 있는 병기중대였다. 그 날이 마침 토 요일이었는데 오후가 되자 중대장이 전 사병에게 갑자기 외출 금 지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물론 일요일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외출이 안 되니 나한테는 갑자기 큰 일이 생겼다. 부대 에 성당이 없어서 주일 미사에 참석하려면 일동이라는 면 소재지 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겁 없이 중대장 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성당에 다녀오라고 쾌히 승낙하 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만 외출증을 끊어서 성당에 다녀왔는데 그 날 저녁이었다. 부처 선임하사가 나를 부르더니, 너는 언제부터 중대장과 상대 했느냐고 '엎드려 뻗쳐' 를 시킨 뒤에 곡괭이 자루로 한 삼십 대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합 자체를 순교(?)로 간주하고 있 었기 때문에 맞으면서도 아픈 줄을 몰랐으며 오히려 묘한 감동(?) 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선임하사는 왠지 나를 때리지 못했다. 나는 누가 때린다고 내 뜻을 굽히거나 또는 겁을 준다고 해서 쉽 게 타협하지 않는다. 하느님 앞에 걸릴 것이 없으면 누구도 나를 꺾을 수 없는 기질이 내게는 있는데, 그게 내가 가진 단점이라면 큰 단점이요 또 장점이라면 큰 장점이었다. 말이 어폐가 있겠지만, 가끔 억울하게 맞는 것은 결코 불행도 아니요 수치도 아니다. 찾아 보면 다 깊은 뜻이 있다. 각설하고, 나는 본래 신자들의 믿음의 척도를 교무금으로 가늠 하곤 했었다. 꼭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봉헌 에는 그 사람의 믿음이 솔직하게 담겨 있었다. 그래서 연말 면접 때만 되면 신자들에게 수입을 묻고 십일조를 권하는데 이때는 또 신자들한테 말로써 얻어맞는 일이 자주 있게 된다. 신부가 돈만 안 다는 것이요 또 그런 신부는 처음 본다는 것이다. 어떤 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시끄러운 적도 있었다. 한 형 제가 나를 욕하는데 도가 좀 지나쳤었다. 그때 사람들이 내 체면과 품위를 염려했지만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 사건에 대해 걱정을 하 지 않았고 또 마음이 상할 이유도 없었다. 그것은 사제로서 내 소 신이요 또 신앙인으로서 확고한 믿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였다. 성당은 다시 조용해졌으며 갈등이 있었던 것만큼 신자들의 신앙은 많이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갖은 비방 으로써 나를 쳤던 그 사람만은 성당에 나오질 못했다. 불미스런 그 의 사생활이 바로 그 자신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그래서 함 부로 때릴(?) 일도 아니다. 때리다 보면 결국은 매가 자기에게 돌 아 오는 것이다. 그나저나, 천주교 신자들은 왜 십일조를 안 하는가?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