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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려움' 이라는 은총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18 조회수839 추천수13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4 산은 '산'이 아니다

'두려움' 이라는 은총
언젠가 서울의 모 성당에서 강론을 끝냈을 때의 일이다. 웬 자 매가 슬그머니 나에게 접근하더니 안수 좀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 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까, 아프지는 않은데 마음이 무척 괴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눈에는 정말 겁이 잔뜩 들 어 있었으며 얼굴에는 시커먼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순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하느님의 은총이 두려움으로 온다 는 것을 설명했다. 이를테면, 은총(하느님의 선물)은 너무도 큰 것 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에게 접근할 때는 항상 이쪽에서 두려움 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자매가 갑자기 손을 부들부들 떨 면서 울기 시작했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신의 은총 앞에는 인간이 결국 자빠질 수밖 에 없는데 그것이 또 하느님 앞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자 세인 것이다. 신앙을 모르는 이들은 자신이 넘어질 때 하느님의 사 랑이 어디 있느냐고 절규하지만, 사실은 그때가 바로 하느님의 은 혜를 만나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나이 일흔다섯에 기름진 고향을 버리 고 사막의 척박한 땅으로 이주한 것도 두려움이었으며, 모세가 오 합지졸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도 두려움이었다. 베 드로가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도 두려움이었으며 바오로가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할 때도 역시 두려움이었다. 한마디로 두려움이 없이는 하느님의 은총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천주교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리아의 생애 도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는 오로지 두려움의 연속일 뿐이었다. 시 집도 안 간 처녀로서 아이를 임신한 것도 두려움이었으며 핏덩이 를 안고 이집트로 피난을 간 것도 두려움이었고 그리고 일찍 과부 가 되고 하나 있는 자식을 잃은 것도 역시 두려움이었다. 이런 것을 바라볼 때, 은혜와 축복의 길은 두려움을 거치지 않고 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하느님의 섭리인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당부한다.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구는 데에는 사실 많 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성서에서 '성령' 이라는 단어는 바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람이 바람에 흔들린다는 것은 성령의 기운이 찾아온다 는 것인데, 이때 돛을 바람 방향으로 올리고 키를 잘 잡고 있으면 배가 아주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된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고 '나 죽겠다!" 하며 나자빠진다면 배는 결국 물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두려움' 그 자체는 사실 기분 좋은 것이 아니며 대단히 혐오스럽고 재미없는 것이다. 자존심도 많이 상하며 체면도 이만 저만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두려움이 큰 은혜가 되는데, 여기서 그것을 은혜로 받아들일 때만 그렇다는 것이지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오히려 큰 불행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어떤 한인 교포의 얘기다. 이 사람이 처음엔 큰 꿈을 가지고 재산을 다 정리하여 이민을 갔 으나 이것저것 손대는 것마다 다 실패하고 결국은 자기의 전 재산 을 다 날리고 수중에는 겨우 70불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타국 만 리에서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가 엉겁결에 찾 아간 곳이 바로 성당이었다. 그가 교포 성당의 한인 신부에게 자신의 사정을 애절하게 말씀 드리자 그 신부가 껄껄 웃으면서, "그 70불은 뭐 하러 가지고 있는 가? 내가 30불을 더 주겠으니 100불을 채워서 하느님께 바쳐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이 말씀을 듣고 기겁을 했다. 도 대체가, 없는 사람에게 도와 주지는 못하고 마치 벼룩의 간을 빼 먹는 그런 식이었다. 성당도 역시 돈만을 좋아한다는 판단에 치를 떨며 일어서다가 그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자기에게 70불이 있으나 없으나 결국 은 마찬가진데, 어차피 망한 것 철저하게 망해 보자라는 뜻으로 하 느님께 바쳤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얻으러 왔다가 도리어 털린 것 이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신부님과 함께 밤새 술을 마시면서 눈물 을 쏟는 중인데, 그때 어떤 자매가 신부님을 불쑥 찾아와서는 사람 을 좀 하나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금은방을 경영하는데 흑인이 무 서워서 도무지 혼자 힘으로는 장사를 못하겠으니 성실한 남자를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70불' 의 남자가 운 좋게 소개되었으며, 그리고 지금은 그 가게를 인수받아 제법 성공한 축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형 제는 실패한 사람마다 찾아다니며 바로 '지금' 이 기회라는 말을 들려주곤 한단다. 대개의 경우 기회는, 보기 좋은 천사(?)의 모습 으로 오기보다는 보기 싫은 악마(?)의 모습으로 오는 것이다. 내 얘기를 한참 동안 듣던 그녀는 비로소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 해 가정까지도 파탄 직전까지 이른 상황을 털어놓았다. 이젠 함께 살아도 살 희망이 없으며 또 헤어진다 해도 다른 대책이 없는 진퇴 유곡의 막다른 길에서 여인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한참 울고 나더니 그랬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는 그녀가 오히려 내 손을 잡아 흔들면서 웃었는데 그 해맑은 웃음에는 진정 해탈의 자유로움이 있었다. 인생은 어렵 게 보여도 어려운 것이 아니며 슬프게 보여도 결코 슬픈 것이 아니 다. 세상이 무너져도 어떻게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살 기도 하고 또 죽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억누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 돈이 우리를 짓누 르고 사랑이 우리를 짓누르며 사치와 향락 그리고 질병과 재난이 우리를 또 짓누른다. 인생은 그래서 '고(苦)'라는 굴레를 계속 맴 돌게 되지만 그러나 진정한 생의 발전은 바로 그 고(苦)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소록도의 환우 한 분이 다리를 자르는 문제로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 때문에 구역 전체를 오 랫동안 진동시켰으며 환우 자신도 굉장히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다리를 자르지 않겠다는 고집을 피움으로 해서 여 러 사람을 힘들게 했다. 나중엔 수녀님들의 권유로 드디어 허벅지까지 썩어 들어간 다리 를 잘랐는데 그 영감님이 나중에 없는 다리를 가리키며 그랬다. "저는 이게 제 다리인줄 알았는데 이것도 결국 제 것이 아닙디다!" 그는 나이 칠십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비록 다리를 잃었 지만 그러나 다리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은 것이다. 세상이 '좋다' 는 것은 사실 벗겨 보면 다 지나가는 것이요 또 결 국은 모두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싫다' 는 것은 그 실체를 깨닫고 나면 다 소중한 것이요 또 우리 인생을 밝게 빛내 주는 보 물인 것이다. 그걸 모른다면, 그는 '삶' 도, 그리고 '믿음' 도 여전 히 모르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만다. 진정함 보물은 '두려움' 으로 포장되어 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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