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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계’에 대한 묵상 - 7.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18 조회수57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2.7.18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사10,5-7.13-16 마태11,25-27

 

 

 

 

 



‘관계’에 대한 묵상



“왜 살아야 하는가?”

 


자주 물어야 근본적 질문입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입니다.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무의미의 어둠보다 견디기 힘든 것도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올 때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나는 누구인가?”

 


역시 자주 물어야 하는 근본적 질문입니다.

내 신원을 묻는 질문입니다.


나를 아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참으로 나를 알아 나를 살 때 참 행복이요


누구나 이런 욕구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읽은 가족을 떠나

몇 년 동안 거문도라는 섬에 칩거하면서 글을 쓰는

어느 작가에 대한 다음 인터뷰 내용을 잊지 못합니다.

 


“섬 생활이 외롭지 않습니까?”

 


“외로움과 심심함을 견뎌낼 수 없으면 여기 섬 생활 못합니다.”

 


전문을 읽어 보니 막연히 외로움과 심심함을 견뎌낸 게 아니었습니다.

외로움과 심심함의 내면에는 바로 ‘관계’가 있었습니다.

섬사람들과의 관계며 육지에서 공부 중인 고3 딸을 위해

적은 돈이나마 적금을 넣으며

매 달 한번 씩 딸을 만나러 육지에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깨달음처럼 스친 것이 ‘관계’였습니다.

 


‘고립단절의 외로움이요 심심함인 줄 알았는데

내면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그물망이 있었구나.


아, 관계는 존재이자 의미이구나.

관계를 통해 내 존재와 의미를 발견하고 확인하게 되니

관계를 떠난 고립단절은 존재도 의미도 상실이겠고

바로 이게 지옥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불교의 무아(無我)도 ‘네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관계 개념이라 합니다.


이런 깨달음이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증진시킵니다.

 


함께의 넓이와 홀로의 깊이를 살아갈 때 온전한 영적 삶입니다.

함께가 없는 홀로의 삶은 맹목이 될 수 있고,

홀로가 없는 함께의 삶은 공허할 수 있습니다.

함께와 홀로의 삶 중에 넓어지고 깊어지는 개인이자 공동체의 내면입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공동체나 우리 수도공동체의 삶만 봐도

이런 진리는 잘 드러납니다.


함께의 시간과 홀로의 시간, 함께의 기도와 홀로의 기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삶입니다.

 


함께와 홀로의 삶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영적 삶은

주님과의 끊임없는 관계의 정화, 관계의 성화, 관계의 심화를 의미합니다.

 


이런 주님과의 깨끗하고 거룩하고 깊어지는

사랑과 믿음의 관계와 더불어 발견되는

참 나의 발견에 참 행복, 참 기쁨이요

여기서 저절로 솟아나는 찬양과 감사의 기도입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공관복음에 수록된 예수님의 하나뿐인 찬양기도입니다.

주님과의 깊은 관계가 참 보물입니다.

바로 어제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세 고을에 대해

깊은 좌절을 체험한 후 예수님의 환희에 넘친 고백입니다.

 


좌절을 넘어 활짝 계시된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고백입니다.


아버지를 만남으로 절망의 벽이 희망과 축복의 문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내적 관상체험에서 샘솟는

찬양과 감사의 삶이요 겸손과 온유의 삶입니다.


찬양은 겸손으로, 감사는 온유로 직결됨을 깨닫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주님의 행복 선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바로 마음 가난하고 깨끗한,

겸손하고 온유한 철부지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이분들과는 대조적인 게 오늘 아시리아입니다.


제 분수를 잊고 하느님 자리에 앉아

제 멋대로 행동하는 교만한 아시리아에게 재앙을 선포합니다.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겸손할 때 구원이요 교만할 때 심판입니다.

새삼 구원과 심판은 하느님이 내리신 다기 보다는

우리가 자초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철부지 같이 마음 겸손하고 온유한 우리들에게

넘치는 하늘 축복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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