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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바라는 것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19 조회수876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 “내가 바라는 것은

 


 

     제가 보좌신부일 때 저는 형식적이고 군대문화적인 인간관계가 싫어서 주임신부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런 가족 같은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했지만, 유독 어떤 분은 제가 편하게 주임신부님을 대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던지, 한 번은 제 앞에서 주임신부님께 대한 철저한 예의를 강조하며 저의 모습을 비판했습니다. 그 분이 생각하는 주임신부와 보좌신부의 관계는 군대의 상관을 대하듯 철저한 위계질서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주임신부님은 아버지처럼 대하는 저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지켜야하는 당연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연찮게 그 분이 일하시는 곳에서 그 분의 부하직원들이 일 년에도 몇 명씩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하직원들이 그 사람 밑에서는 도저히 일 년도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인간관계는 철저한 계급주의이기 때문이고 그런 군대식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고프다고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비판하는 바리사이들을 책망하십니다. 사실 모세 법으로만 따지자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둑질에다가 안식일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둑질은 그 훔친 것의 몇 배를 갚아 주어야 하지만, 안식일에 일을 하면 최대 사형까지도 당할 수 있는 무서운 중죄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도둑질보다는 안식을 법을 어기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판하면서, 제자들 교육을 잘 시키지 못한 예수님도 동시에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두둔하십니다. 사제들도 안식일에 성전에서 일하는데, 성전보다 더 큰 메시아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안식을 법의 특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갈 때 제단에 바쳐진 제물까지도 먹었듯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에 있어서는 작은 법들에 대한 면책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모든 법을 철저히 지키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법들 안에 숨어있는 내가 바라는 것’, 하느님의 큰 뜻과 의도는 알려고 하지 않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두 아들을 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장남은 사업에 크게 성공했습니다넓은 집과 풍성한 식탁호화스런 옷…. 남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했습니다먹고 살기가 빠듯해 항상 정신이 없었습니다더구나 자녀들이 많아서 더욱 생활이 어려웠습니다그런데도 할머니는 장남 집보다는 차남 집에 머물기를 더 좋아했습니다하루는 장남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동생은 먹고 살기도 힘들어요어머니가 그곳에 가시면 부담스러워 해요제가 더 좋은 음식과 옷으로 잘 봉양 할 테니 저희 집에서 사세요.”

할머니는 넉넉한 웃음을 짓더니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좋은 음식과 옷이 아니란다네 동생은 밤마다 내 등을 긁어준다학교에서 돌아온 손자들은 그 날의 재미있는 일들을 들려주지.”

부모를 섬기는 것을 봉양이라 합니다봉양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 양지’ (量知: 헤아려 앎)입니다장남이 어머니를 봉양했다면차남은 양지를 실천한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 養口體, 즉 몸만 신경 쓰는 봉양의 효를 중요시여긴 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느님께 養志, 즉 그 마음과 뜻을 헤아리는 효를 실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처럼 하느님의 모든 법은 지킨다고 하면서도, 그 분의 아드님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그런 것들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당신 아드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더 예쁘게 보일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학교에서 간단한 시험을 쳤는데 문제 중에는 책을 읽고 있는 남자와 장작을 패는 남자의 그림을 놓고 일하고 있는 사람을 골라 동그라미표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독서하는 사람에게 0표를 하였으므로 틀렸다고 X표를 받았습니다.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을 불러 그 채점이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의 아버지 직업이 대학교수이며 따라서 책보는 것이 일이고 장작 패는 일은 오히려 여가 선용의 기분전환이라는 것을 몰랐던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을 판단할 수도 기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저도 주임신부입니다만, 어떤 분들은 제가 보는 앞에서는 저를 참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안 볼 때는 자신의 성격대로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예의를 차리는 것보다 본당신부가 원하는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조용히 일하는 사람이 더 예뻐 보이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법과 예의도 지켜야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그 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그분의 뜻을 항상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큰 효도일 것입니다. 항상 매 순간 그 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뜻이 무엇일지 묵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되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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