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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2 조회수949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7월 22일 연중 제16주일




When he disembarked and saw the vast crowd,
his heart was moved with pity for them,
for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Mk.6,34)


제1독서 예레미야 23,1-6
제2독서 에페소 2,13-18
복음 마르코6,30-34

먼저 3주 동안의 긴 남미 여행을 잘 마치고 왔다는 보고를 드립니다. 비행기 타는 시간만 20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다녀온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그러나 비행의 힘듦보다 남미에서의 좋은 체험들을 통해서 큰 힘을 얻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이과수 폭포의 웅장함, 쿠스코와 마추피추 그리고 나스카의 신비로움, 그 밖의 아름다운 자연경관들을 보면서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 안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교만하게 살고 있었는지요?

이 좋은 기억들은 곧 여행기를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없는 동안 새벽카페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또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염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더 열심히 사는 빠다킹신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감히 해봅니다. 그럼 오늘의 새벽 묵상 글을 시작합니다.

처음 남미 여행을 시작하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긴 일정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도 걱정이지만, 남미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는 것이었지요. 특히 치안이 불안하다고 하니(총기도 휴대한다는 말과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괜히 가기 싫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미에서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곳이 너무나도 좋은 곳임을 깨닫게 되었고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날, 마음속에 다시 걱정이 밀려듭니다.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까요.

각종 원고를 써야하고, 또한 방송 강의 준비와 본당특강 준비도 해야 합니다. 성소국 일 역시 해야 할 것들이 떠올려지면서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러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더군요. 바로 그 순간 문득 “왜 기도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행 안에서도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깨달았으면서도 금세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곧바로 기도했습니다. 성무일도를 천천히 바치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평화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 편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피곤하시어 제자들과 외딴 곳으로 가시면서도 당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을 차마 내치지 못하시고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까?

오늘의 독서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고, 잘 살 수 있도록 평화를 주시는 분임을 이야기 합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복음에 나오는 그 군중들처럼 주님께 매달리는 믿음의 생활, 기도의 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께 매달리고 있었나요? 주님께 전혀 매달리지도 않으면서 온갖 걱정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걱정하고 계십니까? 지금 당장 기도하세요. 주님은 당신께로 향하는 우리의 다가섬을 보고 계십니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방법’에 대한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써 주었다. “먼저 사랑하시오.”(마를레네 디트리히)


파라과이에서 저를 맞이해 준 새벽의 십자가.



내 코 위의 안경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안경을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 안경을 중학생 때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눈이 나빠져서 근시, 난시, 심지어 원시까지 달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경 없이는 사물을 제대로 보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저는 늘 눈으로만 본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단 한 번도 이 안경으로 사물을 본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안경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지요.

내 코에 조용히 놓여 있는 안경을 생각하며, 주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주님을 통해 이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힘으로만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자신의 입장으로만 바라보고 생각하려는 마음 때문에……. 특히 이 안에서 세상의 관점과 욕심이 자리 잡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어떤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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