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리스도적 고통으로의 참여 [은총을 받는 사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2 조회수348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마르코 6,30 - 34>


***********************************************************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군중은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루카 9,10 - 1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요한 6,1 - 2>


오늘 복음에서 들여다 보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라는 귀절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마음은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절실한지 한편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하듯이 번잡하고 시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저마다 각자의 고통거리를 해결하여 평화를 얻고자 하는 바램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한다 할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면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들을 모두 하나같이 빠짐없이 접대를 하다보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볼 겨를조차 시간을 놓쳐서 끝내는 쇠약해 지고 자신들이 도리어 병들어 자리에 눕게도 됩니다. 따라서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특히, 사람들의 발걸음을 피해 조용한 외딴곳에서 기도를 할 시간은 반드시 마련하여야 합니다. 매일 한결같이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은총으로 연약한 이 사람들을 보살펴야 하는 일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총 없이는 인간의 한계에 쓰러지거나 포기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하고 복음은 기록합니다. 

군중들은 육적으로도 약하지만 영적으로도 동시에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상대하는 자리에서는 먼저 자신부터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으로 약한 이들에게서 돌출되는 어떤 영향들을 고스란히 자신이 도리어 받게 됩니다.

육신적인 병자들에게서는 그 병자들의 '나쁜 영향'이 자신에게 들어오게 되고, 영신적인 병자들에게서는 그 병자들의 '악한 영향'이 자신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하여 섬기는 일에서는 무엇보다 '주님의 은총'이 가장 절실한 것입니다.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는 이같은 군중들에게 나오는 많은 영향들을 잘 다스려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서 육적인 영향과 영적인 영향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강한 사람은 악으로가 아닌 선으로써 그 영향들의 지배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은총을 받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결코 그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고통에 자신과 일치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뜻입니다.그리하여 자신께서는 바로 "가장 보잘것 없는 형제 하나"가 되실 수도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하십니다. 가엾은 마음은 상대와 함께 일치할 경우에 그렇게 됩니다. 인간의 고통 안으로 들어가야만 그 고통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의 시대에서 우리가 실천할 때, 이를 그리스도적 고통으로의 참여이다 하고 말합니다. 육적인 고통의 영향, 영적인 고통의 영향을 피하거나 대항해서 싸우지 않고 그 고통에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힘'으로 함께 다스려나가야 하는게 이를 '그리스도의 남은 고통'이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힘이 바로 그리스도적인 사랑(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고통에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예수님의 사랑)으로 결합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아버지의 사랑(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고 말하게 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