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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3 조회수845 추천수16 반대(0) 신고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마태12,38-42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더 이상 무슨 표징이 필요합니까?>

 

 

    신앙 안에서 참으로 경계해야할 적들이 있습니다. 쇄신과 거듭남을 위한 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타성에 빠진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한 노력은 조금도 없이 ‘이래봬도 내가 신앙생활한지 30년이네, 40년이네’ 하는 자만심입니다. 늘 치열하게 자신을 담금질하려는 노력은 뒷전인 채 쓸데없이 지니고 사는 우월의식입니다. 신앙의 핵심에는 조금도 접근 못한 채 부차적이고 비본질적인 외형에만 잔뜩 신경 쓰는 위선적 신앙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런 신앙인의 대표 인물들이 있었으니 그 유명한 바리사이들이요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원래 두 부류 사이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으나 이번은 웬일인지 합심해서 예수님을 윽박지릅니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한 이래 그동안 보여준 표징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식까지 잊어가며 그들을 위한 사랑의 손길을 펼치셨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쫒아내 주셨습니다. 시각장애우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주셨습니다. 청각장애우들의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언어장애우들의 말문을 트이게 하셨습니다.

 

    온몸이 나병으로 문드러진 말기 환자의 피부를 말끔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꼼짝 못하고 누워만 지내던 중풍 병자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미 목숨이 떨어진 회당장의 딸을 되살려주셨습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의 거센 풍랑을 말씀 한 마디로 잠잠하게 만드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치유의 능력과 악령들을 쫒아내는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전무후무한 명 설교,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당신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아임을 명명백백히 밝히셨습니다.

 

    더 이상 무슨 표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사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요구한 표징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표징이었습니다. 결코 요구해서는 안 될 자신들의 개인적인 욕구, 얼토당토않은 허황된 바램, 끝도 없는 이기적인 욕심들을 충족시켜달라는 요구였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그들의 요구 앞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실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깊은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간 단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사탄이 나타나 예수님께 세 번이나 능력을 보여주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얻지 못한 채 물러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향해 뭔가 특별한 표징을 보여 달라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요구 이면에는 사탄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완고해질 대로 완고해진 바리사이들, 끝까지 돌아서지 않는 율법학자들의 행태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셨던 예수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와 남방 여왕의 예를 들며 거의 독설에 가까운 말씀을 그들의 가슴이 던지십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반항하고 오만하고 방탕하기가 하늘을 찔렀던 아시리아 왕국의 수도 니네베 사람들이었지만 요나 예언자의 설교로 회개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그 이방인들이 그릇된 길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섰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주도할 것이며 심판 때에 하느님의 법정 재판관석에 앉게 될 것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참으로 불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자신들은 스스로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민족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개만도 못한 종족이라던 이방인들이 줄줄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갔지만 하느님의 장자격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나라 법정의 피고인석에 다들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나름 많이들 노력했을 것입니다. 타성에 빠진 신앙, 율법주의 신앙에서 탈피해서 참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보겠다고, 진정한 회개의 길로 들어서보겠다고...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지속적 회개’였습니다. 회개는 평생 한번, 아니면 일 에 한번 하고 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매일 매순간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일상적인 과제가 회개인 것입니다.

 

    다행이도 아직 우리 모두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것, 이 세상에 두발로 서 있다는 것은 회개가 가능하다는 표시고 하느님 자비와 용서, 새 생명과 구원이 가능하다는 표시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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