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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3 조회수93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At the judgment, the men of Nineveh
will arise with this generationand condemn it,
because they repented at the preaching of Jonah;
and there is something greater than Jonah here.
(Mt.12,42)



제1독서 미카 6,1-4.6-8
복음 마태오 12,38-42


이번 여행에서는 페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페루 한인성당 본당신부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사실 함께 했던 신부님과 한인성당 본당신부님은 군종신부 동기입니다. 그 인연으로 인해 이번 여행에서 저희 모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분이 군종신부 출신이다 보니 여행 중에 종종 군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저와 다른 신부도 비록 군대를 두 번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사병으로 군대를 정상적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군대 이야기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 중에 군대 이야기를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만 군인이었지, 지금은 군인이 아니지요. 아니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전혀 군인을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얼굴은 하얗고 배는 볼록 나오고, 구리 빛 피부와 탄탄한 근육은 전혀 볼 수가 없는 모습입니다. 또한 군인들처럼 용감하거나 씩씩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어떻게 군인의 모습을 발견하겠습니까? 아무리 군대 이야기를 실감 있게 한다 할지라도 이 모습으로는 군인 같아 보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말로만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군인 같은 모습을 취해야 진정한 군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즉, 우리 신앙인 역시 말로만 신앙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톨릭 신앙인입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 역시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전체가 신앙인다워야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고 실천하는 모습에서 우리들은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내 자신은 과연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 혹시 말로만 신앙인이고 겉모습으로는 전혀 신앙인답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주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의 화려한 영화를 자랑했던 솔로몬보다도 훨씬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분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과거 도저히 회개하지 않을 것 같지 않았던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했던 것처럼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었을까요? 회개의 삶, 사랑의 삶 없이는 주님의 커다란 은총과 사랑을 바로 지금 이 순간 가슴 깊이 느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말로만 신앙인이 아닌, 내 몸 전체로 신앙인다운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보았으면 합니다.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울 때가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불만족은 우리를 떠밀어 평소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 더 확실한 해답을 탐색하게 만듭니다(스캇 펙).



선교사들의 활동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던 파라과이 Atyramarianesla 피정센터



스스로 해야 하는 것.
 

이번 남미 여행에서 자주 들렸던 곳이 입출국 심사대입니다. 많은 나라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입출국 심사대를 자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의 입출국 심사대에서 3명이 나란히 심사를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들을 가리키면서 함께 여행을 하던 신부에게 말했지요.

“우리도 시간 절약하게 같이 들어가자.”

같이 입출국 심사대에 섰습니다. 그 순간 그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They got married?”(둘이 결혼했어요?)

가족만 함께 심사대에 설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자 두 명이 사이좋게 심사대에 서 있으니 이렇게 물었던 것이었지요(동성연애자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곳은 가족이 아니라면 반드시 혼자 서서 심사를 받아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세상에는 혼자서 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역시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남들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 안에는 ‘통공’ 교리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내 자신이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느님 나라에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실천을 할 때 왜 그렇게도 남과 나를 비교할까요? 비교하면서 실천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결국 스스로를 후회하게 만드는 행동과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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