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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4 조회수935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For whoever does the will of my heavenly Father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Mt.12,50)


제1독서 미카 7,14-15.18-20
복음 마태오 12,46-50

어떤 책을 보다가 인상적인 구절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성공에 대한 글인데,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람은 성공을 말하면서도 95%가 성공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성공을 믿는 사람은 없다.’

성공을 지향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성공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제 안에서도 그런 모습이 종종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할 수 없다’라고 단정 지으면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모습은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새벽 묵상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이것입니다.

“신부님, 신부님 말씀처럼 산다면 이야 정말로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합니까? 알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먼 이야기입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사랑할 수도 없고 희생 봉사를 생각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성당에 나갈 시간이 없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나면 그때서야 성당에 나가고, 희생 봉사를 하시겠다고 이야기하시지요.

언젠가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하시는 자매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님께서는 한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시기 때문에 너무나 바쁜 삶을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내어서 봉사 활동을 하십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언제나 한가하면 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은 20년이 넘어도 오지 않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봉사 활동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돈으로 봉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 몸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내 시간도 함께 봉헌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바빠도 내 몸으로 직접 봉사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바로 사사로운 정을 끊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모습을 직접 보여주시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성모님과 형제들에 대해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가족이란 사사로운 정이 묻어나는 혈육보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데 있어 사사로운 정(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정)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사로운 정만을 잡고 있으면 절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닌 접속사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물건이나 행복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속에 있다(에릭 와이너).



대학원 1학년 한달피정이 어제 끝났습니다. 13명의 신학생 수고했어요.



살면서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살면서 믿음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지난 토요일에 남미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시차적응을 위해 최대한 늦게 자려고 텔레비전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한 방송을 통해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지요. 이 방송에서는 한 남편이 그릇된 사랑으로 인해 아내를 때려서 죽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편은 볼품없는 자신을 아름다운 아내가 혹시 떠날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을까 라는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술을 마시면 아내를 종종 구타했고, 결국 아내를 때려죽이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아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한 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내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면, 아내의 귀가 늦어지면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냐?’라면서 걱정과 사랑의 감정이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다면 어떨까요? 오히려 ‘이 여편네가 지금 외간 남자를 만나고 있는 것 아냐?’라면서 이상한 생각과 함께 욕이 나오게 되고 동시에 의심이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성장시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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