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어린 새색시와 데릴사위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4 조회수678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모성애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본능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되는 길 어머니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기에 여섯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그 고단한 삶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오는 동안 더욱 더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가 된 것이라고 믿는다. 어린 새색시와 데릴사위

내 책상 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내가 시골 마당에 서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내가 서제서품을 받은 후 고향에 돌아와서 찍은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사진이다. 비록 누 렇게 빛이 바랬지만 그 사진을 보면 볼수록 부모님과 나의 자화상이 더욱 크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진 속에서 신참 신부인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아 버지와 어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 가만 하다. 그래도 아버지는 키가 크고 옷차림에 멋을 부리셨으나, 어머니는 작은 키에 다부져 보이긴 해도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삶 의 고단한 흔적이 역력해 보이는 시골 아낙네의 모습 그대로다. 나는 사진을 볼 때마다 유복한 누산리 김 진사댁 딸로 태어나 호강 하며 사시던 어머니가 왜 아버지가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남 매를 키우며 평생 힘든 노동을 감당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시장에 서 반찬이며 나물을 팔면서 온갖 풍상과 고생을 혼자 겪으며 살아 야 했는지, 그 기구한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물론 어머니는 한국에서 태어난 동시대의 여느 여성들처럼 전쟁과 가난과 정신적 핍박을 똑같이 겪어 오셨지만, 우리 어머니만이 감내 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독특한 인생 여정이 있었다. 어머니를 여 윈 후에야 어머니와 내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가 유독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가 태어난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누산리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일제치하였다고는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꽤 많은 농지를 갖고 있었기에 어머니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그리 고 어머니의 고모부는 독립운동을 하던 꼿꼿한 성품을 지닌 천주교 신자였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 이어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우 리 집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의 모태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외증조부가 살던 시대는 조선왕조가 천주교를 크게 박해한 탓도 컸지만 사회적으로도 천주교 신자가 크게 환영받는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천주교 신앙을 줄기차게 지켜 온 외가를 지금 생각 해 보면 참으로 대견한 일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어 머니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해 오셨다는 것이 지금의 나로서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사제로서 내가 어머니의 모태신 앙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어머니의 형제는 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하나, 당시의 가 족 구성원으로 보면 퍽 단출한 가족이었다. 유일한 아들이었던 외삼 촌은 어머니보다 열 살이나 어려서 외할아버지 대신 집안일을 해 나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열여섯 살 갓 넘은 딸을 시집보내기에는 다 소 일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맡아 줄 다부지고 건실한 사윗 감을 원하게 되었다. 그때 외할아버지의 눈에 들어온 사윗감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바로 양촌면 흥신리에 살고 있는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다섯 살 연상인데다가 여덟 남매 중 셋째 아들이었다. 다섯 형제와 세 오누이, 그 중 아버지는 유독 힘도 좋고 재주가 넘쳐 서 한 마디로 말하면 할아버지의 막강한 '기대주' 였다. 아버지는 활달한 성격에 야무진 체격으로 동네 대소사를 앞장서서 해결했으며, 판소리를 따로 배우진 않았지만 한 번 보고 들으면 금방 장단을 맞춰 구수한 노랫가락을 뽑아내어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인기 가 있었다. 특히 입 언저리까지 내려온 둥글고 긴 부처님 귓불은 모두 입을 모아 복을 타고난 장수의 귀라고 했다. 게다가 일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 아버지를 두고 과년한 딸을 둔 집이라면 탐을 내는 귀한 신랑 감이었다. 그 소문은 도보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누산리까지 파다 하게 퍼져 외할아버지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