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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의 20일간 남미 여행기(9일)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4 조회수803 추천수4 반대(0) 신고

79일 월요일

 

남미에 가면 꼭 가봐야 한다는 곳이 세 군데 있다고 한다. 첫째는 이과수 폭포, 두 번째는 남극의 빙하, 세 번째는 마추픽추이다. 이과수는 지난주에 보았고, 이번 주에는 마추픽추가 목적지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 쿠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너무나 놀라운 경관을 보게 되었다. 만년설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그리고 그 만년설과 가까운 곳에 내리는 비행기인 것이다. 드디어 1130, 쿠스코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만년설

 

 

공항에 도착하면서의 느낌은 하늘이 너무나 가깝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너무나 푸르렀고 구름이 내 눈높이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하긴 이곳 쿠스코의 해발이 3,300미터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만년설도 가깝게 보이고, 따라서 하늘도 너무나 가깝게 보이는 것이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맑은 하늘과 내 눈높이의 구름이 인상적이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페루는 동쪽으로는 아마존,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칠레, 북으로는 에콰도르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잉카 제국이었으며 그 중심에 바로 이 도시 쿠스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호전적인 잉카인들은 타 부족의 족장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으며, 그 결과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인구 20만 명이 넘는 도시로 성장했고 수많은 유적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은? 잉카의 고도시라는 생각보다는 스페인에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페인의 파괴 행위로 잉카 신전과 건축물 대신 광장과 대성당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카 제국의 흔적을 많이 만나게 된다.

먼저 찾아간 곳은 태양의 신전과 산토 도밍고 성당이다.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워 파괴와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스페인 침략자들의 대표적인 역사적인 사건이 이 태양의 신전과 산토 도밍고 성당이다. 피사로와 스페인 군대가 처음 쿠스코에 왔을 때 태양이 반사되어 빛나는 황금의 신전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곧 신전의 안팎을 장식하고 있던 황금을 모두 약탈하고 신전을 부순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산토 도밍고 성당인 것이다.

 


 

잉카시대의 축제 때 술로 가득 채웠다는 우물.

 


 

황금의 신전 흔적.

 

너무 견고히 만들어져 부수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태양의 신전은 산토 도밍고 성당 앞에 남아 있는 거대한 신전의 터와 일부 돌담만이 남아 옛 모습을 추측하게 한다. 산토 도밍고 성당 바깥과 내부에 일부 남아 있는 돌담은 스페인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표면까지 정교히 다듬어져 물샐 틈 없이 쌓아 올려져 있으며, 1950년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산토 도밍고 성당은 무너졌지만 돌담은 견실했다고 한다.

 


 

견고한 돌. 40톤이 넘는 돌을 어디서 가져왔고 어떻게 견고하게 쌓을 수 있었을까?(주교님 손 찬조 출연)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이 없다.

 


 

태양의 신전과 산토 도밍고 성당

 


 

이렇게 조그만 틈도허용하지 않는 정교함(역시 주교님 손 출연)

 


 

태양의 신전 외부

 

그런데 가이드를 해주신 형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스페인은 이 놀라운 건축물을 보고서는 잉카인들에게 똑같이 만들어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르게 돌을 쌓더라는 것이다. , 잉카인들이 세운 도시라기보다는 그 전에 있었던 원부족이 이렇게 완성했던 문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증거가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고도가 높아서인지 숨이 차다. 그래서 잠시 쉬기 위해 식당을 찾아가 점심식사를 했다. 멋진 연주도 들으면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다시 관광 시작.

 


 

코카차. 코카인잎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던데... 신기해서 마셔 봄.

 


 

옥수수. 크기가 우리나라 것의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스프. 맛있었다. 처음에는 라면인 줄 알았네. ㅋㅋ

 


 

메인 음식 꼬치요리. 맛있었습니다.

 


 

밥 맛있게 먹으라고 음악까지 생음악으로~~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이다. 아르마스 광장은 커다란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잘 가꾸어진 조경과 분수대가 있어 많은 이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라서인지 엽서를 파는 소년부터 여행사의 호객 행위를 하는 아저씨, 원주민 전통 복장을 하고 새끼 야마와 함께 사진을 찍어 주고 돈을 받는 아주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유럽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광장의 평화로운 모습과는 달리 이곳의 옛 주인이었던 잉카 제국 후손들의 초라한 행색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대성당에 들어가기 전, 12각의 돌을 보러갔다. 잉카의 정교한 건축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돌이다. 조그마한 틈새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아귀를 맞추어 촘촘히 쌓아 올린 벽의 증거이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12각의 돌을 보기 위해 가는 골목길

 


 

12각의 돌. 한 번 세어보세요.

 


 

아르마스 광장에 위치한 라 콤파냐 데 헤수스 성당.

 

이제 대성당이다. 우선 외관은 웅장하고 위엄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부는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서 찍을 수 없었음). 마치 우리나라의 성황당에 온 느낌이라고 할까? 예수님 몸을 왜 이렇게도 정신없이 치장을 했는지...

아무튼 이 성당은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원래 이 자리에는 잉카의 위라코차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페인 침략자들이 이를 부스고 성당을 지은 것이란다.

내부에는 으리으리한 제단과 각종 기물, 그림들이 가득하다. 특히 대성당에 있는 여러 성상 중에는 원주민을 닮은 검은 예수님상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인상깊은 것은 이곳에 걸려 있는 최후의 만찬그림이다. 이 그림은 다빈치의 그림과 달리 쿠이와 치차를 먹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배신자 유다의 얼굴 대신 침략자 피사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쿠스코 근교 여행이다. 3,860미터까지 오른다. 숨차고 머리도 아프다. 그러나 볼 것은 봐야 하니까...

탐보마차이에 도착했다. 잉카 제국 시절 쿠스코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한 요새로 사용되었던 곳이란다.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탐보마차이.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주교님의 인증샷... 산소부족으로 힘드셨을텐데...

 


 

겐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거대 바위이다.

 

 

푸카 푸카라.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물이 샘솟는다고 해서 성스러운 샘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잉카인들이 쌓아 놓은 정교한 벽과 수로를 따라 두 줄기의 물이 흘러나온 곳이다. 자연적으로 샘솟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벽과 수로를 통해 나오게 된 것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푸카푸카라.

 

 

호흡이 가쁜 것을 참아가며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 호텔로... 이곳 호텔의 높이는 2,800미터라고 한다. 이곳 역시 백두산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역시 산소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내일은 마추픽추, 이제 고도가 낮아지니 좀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우루밤바의 아우구스토스 호텔에서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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