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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일곱 살 엄마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7 조회수506 추천수3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모성애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본능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되는 길 어머니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기에 여섯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그 고단한 삶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오는 동안 더욱 더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가 된 것이라고 믿는다. 열일곱 살 엄마

지금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 했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격변이라고 할 수 있 다. 도시는 물론 농총도 예외는 아니다. 농사일과 집안일 모두 크게 바뀌었다. 옛날에는 밥 지을 때 아궁이에 불을 때야 했고, 빨래는 아 무리 추워도 냇가 빨래터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해야 했다. 집안 청소 역시 일일이 엎드려서 걸레질을 하고 나면 허리가 무척 아팠다. 거기에다 논농사 밭농사 등 손 안 가는 일이 없었다. 지금은 전기밥솥, 세탁기, 청소기가 집안일을 대신 해 주고 농사일에도 기 계가 동원되지만,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그 불편과 고통이 말 할 수 없이 컸다. 게다가 계속되는 출산과 육아는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 로 너무 큰 부담이었다. 우리는 그저 누구나 겪으며 살아온 과거지 사려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삶을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천국이다. 그렇게 일손이 없는 외가에서 우리 아버지는 대들보 같은 존재였 다. 본래 성격이 활달한 아버지는 낯선 처가에 온 첫날부터 몸을 사 리지 않고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집 안팎으로 아버지의 손길 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외할아버 지는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감추지 못하셨다. 사위가 퍽 마음에 들 었던 것이다. '내가 사위 하나는 제대로 들였구나.' 외할아버지로서는 어린 딸이 시댁에 들어가서 엄한 시집살이를 하지 않아서 좋고, 또 어린 아들이 해야 할 일들을 사위가 알아서 척 척 해 주니 아버지가 무척 믿음직스러웠던 것이다. 아버지는 타고난 농사꾼이었을 뿐만 아니라 손재주가 좋아서 소 와 말이 끄는 꽃가마를 만들어 동네 결혼식이나 축하연에 빌려 주고 임대료를 받아 심심찮게 돈벌이도 했다. 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어 오고부터 처가의 살림살이는 눈에 띄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혼인을 하긴 했지만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일 잘하는 남편과 친정 부모님 보호 아래 어머니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결혼한 이듬해인 1933년, 큰딸 호우 (마리아)를 낳았다. "애가 애를 낳았구나."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열일곱 살에 아기 엄마가 된 딸 을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어머니는 큰누님을 낳아 기르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많이 남기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형적인 농촌 의 일과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일찍 잠이 드셨다. 온종 일 집안일 하랴 아이 돌보랴 피곤해진 어머니는 한번 잠이 들면 아 기가 배가 고파 아무리 울어대도 눈을 뜨지 못했다. 안방에서 주무 시던 외할머니가 건너와 흔들어 깨워도 소용없었다. 단잠을 자는 딸 을 깨우지 못한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저고리를 헤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나오곤 하셨다고 한다. 사실 친정에서 신혼생활을 하셨으니 긴장할 일도 없고, 마음 놓고 주무시느라 아기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시댁에서 고된 시 집살이를 하셨다면 어머니의 이런 행동이 큰 흉이 되었겠지만, 외할 머니는 어린 딸이 마냥 사랑스럽고, 아직도 그저 아이 같은 딸이 아 기를 키운다는 사실이 애잔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귀한 딸이 낳은 첫 외손녀이다 보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바 쁜 일과 중에도 손녀딸의 귀여움에 푹 빠지셨다. 당시 30년대에는 아기용 포대기가 따로 없이 가벼운 이불을 둘러 아기를 업곤 했는데, 외할머니는 예쁜 손녀를 위해 무명을 손수 마름질해서 붉은색으로 물을 들인 아기 포대기를 따로 만들어 주셨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은 호우누님은 갓난아기 때부터 코도 오 뚝하고 눈도 크고 똘망똘망 예뻤다고 한다. 그러니 어머니의 눈에는 오죽했겠는가. 어린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해 주신 붉은 포대기에 돌 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업고 동네를 도는 것이 낙이었다. 동네 사람 들은 붉은 포대기만 지나가면 모두 한 마디씩, 아이가 어쩜 이렇게 예쁘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 마 냥 좋아서 어린 마음에 날마다 아이를 업고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던 동네 마실을 다닐 수 없게 만든 일이 생겼다. 옆집에 강화에서 새댁이 시집을 왔는데 어 머니는 여느 때처럼 아기를 업고 그 집으로 놀러 가셨다. 새댁은 아 기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어머, 아기가 어쩜 이렇게 예뻐요?" 새댁은 머잖아 태어날 자기 아이를 떠올리는 듯 아기 볼을 쓰다듬 으며 입을 맞추었다. 자식 칭찬에 약한 어머니는 그저 수줍게 웃고 있는데, 그때 새댁이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처녀는 이렇게 동생을 잘 돌봐 주니 어머니가 얼마나 편하실까." 그 순간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은 아기가 어머니의 딸인 줄 알지만 새댁은 사정을 몰라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인데, 그 말을 처음 들은 어머니로 서는 큰 충격이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애는 동생이 아니라 제 딸이에요' 하고 웃어 넘겼을 법한데, 그때 어머니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져 모르 는 사람들은 그걸 좋지 않게 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날 어머 니는 포대기를 풀어 아기를 마루에 털썩 내려놓으며 할머니에게 이 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 앞으로는 애 업고 동네 안 나갈 거예요. 옆집 새댁이 날 호우 언니로 보잖아요." 외할머니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린 아기를 다독이며 어머니를 꾸 지람하셨다. "새댁이 모르고 한 말인데 그게 무슨 흉이라고 화를 내는 거니? 새댁은 이렇게 예쁜 아기를 가진 널 부러워할 게다." 하지만 어린 어머니는 그날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 지 않았다. 그리고 그후로는 아기를 업고 나가는 일이 없었고, 사람 들에게 자랑하지도 않았다. 사실 옛날에는 맏이가 막내동생을 업어 키우는 일이 많았으니 그리 흉이 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강화 새댁 이 어린 어머니를 언니로 본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새댁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그저 당연하 게만 생각해 오던 부모 자식 관계가 남들 눈에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그 일로 자신의 처지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놀랐던 것이다. "그래, 나는 이제 애가 아니다. 나는 호우를 언니 입장에서 돌본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서 돌보고 있는 것이다. 호우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나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극진한 보호 아래 그저 소꿉 장난 하듯 딸을 업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을 통해서 자신 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어머니와 첫 아이와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그처럼 어머니에게 진짜 어머니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만든 호우 누님. 어머니와 호우누님은 모녀이면서 동시에 자매처럼 그렇게 다정한 삶의 동반자였다. 그 옛날 딸을 업고 강화 새댁에게 언니와 동생으로 오해를 받았던 것처럼, 두 분은 함께 바깥나들이를 할 때 마다 자매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계속되었다. 그럴 때마다 호우누님 은 어머니에게 "내가 동생으로 오해를 받았으니 이번에도 내동댕 이치지 않아요?" 하고 농담을 건네곤 했다. 어머니와 호우누님과의 나이차이는 열일곱 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큰누님이 일흔다섯이 었으니까 어머니와 큰누님이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언니와 동 생인줄 알았다. 누구나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성애를 가지고 책임감을 느끼면서 비로소 엄마의 자격을 갖게 된다. 어머니 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기에 그때는 성숙한 모성을 가질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우누님을 시작으로 호순, 옥순(한 살 무 렵 세상을 떠남), 완우, 창우 그리고 나 찬우까지 여섯 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그 고단한 삶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오는 동안 어머니는 더 욱더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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