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8 조회수681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7월 28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No, if you pull up the weeds
you might uproot the wheat along with them.
Let them grow together until harvest.
(Mt.13,30)



제1독서 예레 7,1-11
복음 마태 13,24-30

놀부 마누라가 부엌에서 밥을 푸는데 거지가 들어온 것입니다. 거지는 간절히 부탁하지요.

“제발 부탁입니다. 벌써 이틀이나 밥을 못 먹었어요. 밥 좀 주세요.”

그러자 놀부 마누라가 말합니다.

“사흘 지난 쉰밥도 괜찮은가요?”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이 거지는 “그럼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지요. 그러자 놀부 마누라는 이렇게 차가운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럼, 사흘 뒤에 들러요!”

어떤 유머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놀부 마누라처럼 행동하시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그러나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뜻과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의 욕심만을 차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손해와 아픔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사랑의 실천은 능력 없고 힘없는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기를 내세우는 도구로서만 이용하는 사람 등등 어쩌면 앞선 놀부 마누라보다도 더 심한 사람이 많은 세상은 아닐까요?

오늘 새벽, 어제 뉴스를 검색하다가 안타까운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60대 할머니와 10개월 된 증손자의 죽음에 대한 기사였지요. 이 기사를 보며, 우리의 관심 부재가 이런 죽음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아이를 돌보던 할머니께서 지병으로 화장실에서 쓰러져 돌아가시고, 아무도 10개월 된 갓난아기를 돌보지 않아 아기 역시 죽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웃 주민들이 “이달 초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고, 아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입니다. 거의 한달 동안 가족도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고, 이웃 역시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무관심이 생명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무관심,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 들이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행동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듯 밀 가운데에 몰래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는 원수의 모습이 아닐까요? 즉,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이 바로 내 자신은 아니었을까요?

좋은 밭에 좋은 씨를 뿌리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이 주님을 도와 일할 때, 이 세상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가 되어 주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라지를 거두어 내겠다는 종들에게 혹시라도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힐까봐 걱정을 하셔서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지금 가만히 두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의 일을 도와 함께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먼 훗날 주님의 수확 때에 뽑혀 버려지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사람만이 넘어질 수 있다(로베르토 고이주에타).



남미에서 정말 많이 마셨던 맥주. 갔다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 맥주맛이 그립네요. ㅋㅋ




내 생각을 멈추지 마라.
 

기쁜 일, 즐거운 일, 행운이다 싶은 일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느낀 일, 생각한 일과 이어져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불쑥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자기가 뿌린 씨에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계속 운동을 하지 않아서, 어제 새벽부터 다시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남미 여행으로 인해 밀린 일들이 많아서 어제 새벽 자전거를 타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가야지.’라고 포기하려고 했지요. 즉, ‘운동을 안 해서 찌뿌듯하다.’ -> ‘자전거 타고 싶다.’ -> ‘시간이 되면 가야지.’라고 하면 더 이상 나의 생각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을 뒤로 미루더라도 자전거를 타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어제 새벽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서 2시간가량 타고 왔습니다. 이 과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약간 덥기는 했지만 좋은 날씨를 맞이할 수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에 아주 예쁜 건물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길가에 놓여 있는 들꽃을 바라보며 소박한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갖게 된 상쾌함은 또 어떻게 표현할까요?

자신의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 생각을 계속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나갈 때, 내게 주님의 커다란 선물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도미노처럼 말이지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