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30 조회수820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ustard seed
that a person took and sowed in a field.
It is 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yet when full-grown it is the largest of plants.
It becomes a large bush,
and the ‘birds of the sky come and dwell in its branches.
(Mt.13,31-32)


제1독서 예레 13,1-11
복음 마태 13,31-35

요즘 저는 너무 이른 새벽에 일어납니다. 보통 일어나는 시간이 새벽 2시쯤 되고 있지요. 조금이라도 더 늦게 일어나기 위해 자정이 넘어 잠을 청해도 마찬가지로 신기하게 2시면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힘듭니다. 왜 이렇게 제가 일찍 일어날까요? 요즘 너무 더워서? 하긴 요즘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지만, 저의 경우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얼마 전에 다녀온 남미 여행 후에 겪게 되는 시차 적응 때문이지요.

이렇게 시차 적응이 안 되는 제 몸을 보면서, 이 몸과 내 머리는 참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머리로는 정상적인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나기를 원하는데, 내 몸은 얼마 전에 있었던 남미의 시간에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내 몸과 머리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시차적응만이 아니라, 다른 경우에서도 내 몸과 머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요즘의 더위로 인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다 보니 너무 피곤합니다. 이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철을 탔는데 마침 빈자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게 웬 횡재냐?’하면서 얼른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바로 자기 앞에 서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갈등이 생기겠지요? 몸은 피곤하지만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머리는 피곤하니까 그냥 눈감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양보할 것이니까 굳이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요.

어쩌면 이런 식의 몸과 머리의 갈등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데 익숙한 몸의 움직임을 따르기보다는, 순간의 편함과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머릿속의 움직임을 따르는데 더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의 커다란 은총과 사랑을 이 세상 안에서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부족함을 세상의 것으로 대신 채우려고 하지요. 그러나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채우려 해도 그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도 나오듯이 주님께서는 늘 비유로 쉽게 설명해주셨지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도 쉽게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 함께 하려고 할 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내 머리로만 받아들이면서 세상의 기준을 내세운다면 절대로 체험할 수 없는 것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머리로만 주님을 받아들이려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내 몸 전체로 주님을 받아들여서, 주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웃지 않는 건 은행에 백만 달러를 저금해 두고도 평생 찾지 않는 것과 같다(처칠).



페루에서 보았던 멋진 분수쇼.


 

너를 특별하게 하는 것(‘행복한 동행’ 중에서)
 

드림웍스가 만든 <마다가스카 2>는 아프리카에 불시착한 뉴요커 동물 4인방의 유쾌한 모험을 담은 만화영화다. 영화 속에는 단짝 친구인 사자 알렉스와 얼룩말 마티가 생경한 원시의 삶에서 갈등을 겪는 부분이 나온다.

자신을 쏙 빼닮은 수백 마리의 얼룩말 집단을 만나 신이 난 마티는, 얼마 못 가 발걸음과 말투, 행동까지 자신을 따라 하는 무리 속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자신의 장기이던 뜀박질과 물 뿜기 묘기를 곧장 따라해 버리는 집단의 일사분란함 속에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어느 날, 알렉스마저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자 크게 상심한다.

이튿날, 알렉스는 마티에게 사과하기 위해 얼룩말 무리를 찾아가지만 수백 마리의 얼룩무늬 속에 숨어 모른 체하는 마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곧이어 알렉스는 하나같이 자신을 쳐다보는 무리 속에서 오직 등을 돌리고 있는 한 마리의 얼룩말을 정확히 짚어내며 이렇게 외친다.

“마티! 거기, 등 돌리고 있는 유일한 너 말이야, 너. 뭐가 너를 특별하게 만드는 줄 알아? 바로 이들이야. 이들 모두 까만 바탕에 흰색 얼룩이지만 넌 흰색 바탕에 까만 얼굴이지. 너에겐 꿈이 있어. 넌 항상 그래왔지. 너에겐 훌륭한 재능이 있고, 누구보다도 나에게 친구의 참된 맛을 알게 했어.”

때론 자신이 광활한 우주 속 한 점처럼 미미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세상에 똑같은 무늬는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과 같은 가치와 이유를 지닌 존재는 지구상에 오직 당신 하나밖에 없다.

세상에 똑같은 무늬가 없다는 말.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기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나를 창조하신 주님을 느끼면서 행복한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