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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견의 기쁨 -하느님 발견, 나의 발견- 8.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1 조회수47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8.1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1696-1787) 기념일

 

예레15,10.16-21 마태13,44-46

 

 

 

 

 



발견의 기쁨

 


-하느님 발견, 나의 발견-

 

 

 

 

 

긍정적인 밝은 말이 마음을 환히 밝힙니다.

 


‘희망’ ‘믿음’ ‘사랑’ ‘기쁨’ ‘생명’ '빛‘ 등 끝이 없습니다.


웬만하면 긍정적인 밝은 말을 골라 쓰는 것도

이웃에 대한 배려요 사랑입니다.


얼마 전 어느 자매의 말이 이런 확신을 굳게 했습니다.

 


“ ‘영원’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져 좋습니다.”

 


사실 하느님이란 말만으론 웬 지 허전해 영원을 붙여

‘영원하신 하느님’이라 부르니 마음이 평화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묵상 중에도 ‘발견’이란 말을 발견하고 참 기뻤습니다.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발견’이란 단어였습니다.


짧고 강렬한 복음이라 전부 인용합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깊은 진리를 함축한 복음말씀입니다.


여섯 개의 주목되는 단어, 찾음-보물-발견-기쁨-매각-매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중 중심 단어는 ‘발견’입니다.

 

오늘은 ‘발견의 기쁨’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발견의 기쁨하면 떠오르는 게

예전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의 보물찾기입니다.

얼마나 흥미진진한 놀이였는지요.

숨겨 놓은 보물 쪽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이


오늘 복음의 비유를 잘 이해하게 합니다.

 

창조의 기쁨, 발명의 기쁨, 소유의 기쁨이 아니라 발견의 기쁨입니다.

참 기쁨은 눈이 열렸을 때의 발견의 기쁨입니다.

참 영성가들은 발견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 무엇도

매일 새롭게 보물을 발견할 때의 그 기쁨과 감동을 대치할 수 없습니다.


보물찾기는 그대로 믿는 이들의 삶을 상징합니다.

보물찾기 인생입니다.

행복을, 희망을, 구원을, 기쁨, 감사를 옆에 두고도

눈이 닫혀 발견하지 못해 어둡고 우울하게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물입니다.

그리스도가 보물입니다.

참 나가 보물입니다.

진정 찾아야 할 보물입니다.


오늘 보물이, 진주가 상징하는바 하느님이요 그리스도요 참 나입니다.

이 셋은 세 개의 보물인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의 보물입니다.

한 보물의 세 측면입니다.


무언가를 찾는 사람, 바로 이게 인간의 정의입니다.

찾아야 보물도 발견입니다.


찾지 않으면 절대 보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무슨 보물을 찾느냐가 문제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보물은 참 보물이 아닙니다.

이 모든 보물이 가리키는바 궁극의 참 보물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우리 수도승들, 바로 하느님 보물을 찾아 나선 이들입니다.


평생 보물을 찾아 나선 삶이었는데

세상 보물은 얻었지만 하느님 보물을 얻지 못했다면

참 공허하고 쓸쓸한 인생입니다.


반면 보이는 세상 보물은 얻지 못했어도

하느님 보물은 얻었다면 충만하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아무도 뺏어갈 수 없는, 거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참 보물인 주님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보이는 세상 것들이 상대화되어 버립니다.

말 그대로 무집착의 초연한 삶입니다.

비로소 소유로부터 해방되어 존재의 기쁨을 누립니다.


하느님 보물을 지녔기에

세상 것들 모두가 시시해져 버리고 관심도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래야 저절로 택하는 자발적 가난입니다.

내적으로 참 자유롭고 부유한 이들입니다.


값싼 은총, 값싼 발견은 없습니다.

하느님 발견은 동시의 나의 발견입니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가듯 기쁨과 시련 역시 함께 갑니다.

예레미야의 하느님 발견이, 자기 발견 체험이 이를 입증합니다.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시련의 깊이에서 하느님을 발견한 예레미야의 기쁨의 고백입니다.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쁨의 고백을 하던 예레미야는 다시 신세 한탄의 기도입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시련의 고통 중에 치열한 기도와 더불어 깊어지는 주님과의 관계요

하느님을, 나를 발견하는 예레미야입니다.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도는 참 보물이신 하느님을,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보물찾기 인생입니다.

기도의 은총으로 마음의 눈만 열리면

지금 여기서 발견되는 주님의 보물, 나의 보물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기쁨은 참 보물인 주님의 발견에, 나의 발견에 있습니다.

 

한 번 보물찾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롭게 지금 여기서 찾아 발견해야 하는 보물인 주님과 나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의 참 보물인 주님을 발견하고 모심으로 참 나를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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